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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1008w 신명기 강해 47</p>
<!-- paragraph:p0002 -->
<p class="p1">신 21:15-2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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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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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1: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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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6 -->
<p class="p1">[22:1]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3]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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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8 -->
<p class="p1">15절-17절은 장자의 상속권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원초적인 창조질서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장남과 차남의 선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가계에는 더는 평화가 유지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왕조사를 보면 왕의 총애를 입은 후궁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피 비린내 나는 궁권내의 권력싸움이 발생했습니다. 성경은 누구의 아들이든 장자에게 장자권을 보장하라고 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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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18절 이하는 패역한 아들에 대한 처벌입니다. 아들을 징계를 해도 통하지 않는 경우 부모의 마지막 선택은 성문에서 벌어지는 재판에 회부하라고 합니다. 장로들이 사실을 확인 후 인정이 되면 그 성읍사람들이 다 돌을 던져 그를 처단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른 시기부터 부모에 대한 패역을 가혹하게 징계했습니다. 왜 이렇게 부모에 대한 반역이나 불효에 대해 가혹하게 징계하고 처벌하라고 명하셨습니까? 본질상 하나님 공경과 부모 공경을 같은 것으로 이해해 왔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에 무책임하고 불성실하면 하나님 공경에 대해서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게 성경의 기본적인 인식이자 가르침입니다. 아무튼 부모 공경의 연장선상에서 하나님 공경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흔히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고 합니다. 불순종하고 불효하는 자식은 돌로 쳐죽이라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매우 극단적이고 가혹한데, 이렇게 해야 하나님 공경도 바르게 이루어진다는 취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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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마지막 22절 이하는 율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를 나무 위에 다는 규례입니다. 부모에게 불순종해서 돌에 맞아 죽은 경우 그대로 장사지내게 하지 않고 나무에 걸었습니다. 그렇게 수치를 당하게 했습니다. 나무 위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이며 수치를 당해야 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밤새도록 나무 위에 시체를 두지는 말라고 합니다. 낮 동안만 나무에 달고 밤에는 거기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주님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왜 주님이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리셨을까요? 주님의 죽음은 속량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저주 받아 나무에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대신 당하신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고, 나무에 달린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는 나무 위에 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며 늘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달릴 자리에 주님이 달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더는 우리에게 저주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주님도 나무에 달려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왜 나를 저주하십니까? 라는 의미입니다. 이 사실을 새삼 깨닫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사형수를 나무에 달던 율법은 주님의 십자가의 예표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가 돌에 맞아야 하고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야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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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이어지는 신명기 22장 1-5절입니다. </p>
<!-- paragraph:p0015 -->
<p class="p1">1절 이하의 말씀은 남의 것을 취하거나 남의 어려움을 못 본 체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그가 혈육일 경우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소나 양을 봐도 성가시고 바쁘니까 못 본 체 합니다. 성경은 내가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남을 돕는 게 옳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꼭 기억합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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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5절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여자가 남장을 하거나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은 성서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복장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정해주신 성의 정체성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유니섹스(unisex)가 대세입니다. 의상도 헤어스타일도 장신구나 화장까지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성적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성을 인위적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이것은 막장으로 가는 인간문화의 현주소일 뿐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창조의 질서에 역행하는 짓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순리에 맞게 사는 게 옳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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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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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 본문의 주제는 하여간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순리를 좇되 역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자권의 문제, 부모 공경의 문제, 형제를 돌보는 문제, 성의 경계 문제를 어기면 하나님이 아름답지 않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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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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