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곰과 호랑이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종종 하늘 아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런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하였으므로 환웅으로 하여금 세상에 내려가 인간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삼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이 되고 싶다며 환웅에게 기도하였다. 환웅은 그들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너희가 이것을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 곰과 호랑이는 마늘과 쑥을 먹으며 빛을 보지 않고 깊은 굴속에서 지냈는데 곰은 삼칠일(21일) 동안을 버텨 여자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가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단군고기’ 中에서).


고려 후기의 승려였던 일연은 <삼국유사>를 편찬하며 그간 입으로만 구전되어 오던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설화를 역사 맨 앞에다 배치하였습니다. 단군 이야기는 그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설화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선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다는 것은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말하는 듯 하지만 그보다도 여기에는 누구든지 동물적인 성정을 다스리지 못하고서는 결코 사람이라 볼 수 없다는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결국 호랑이는 실패하는데 이는 당시 곰을 토템적 신앙의 상징으로 삼던 부족이 호랑이 부족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고조선 건국의 주도권을 잡게 된 사실을 뜻하는 것일 것입니다. 곰이 여자가 되었다는 것도 고대 모계사회의 문화인류학적인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당시 고조선 사회를 떠받쳐 준 <정신적 모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근거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단군조의 고대사회 이념은 인간이 서로 피 흘리는 일 없이 자연의 영험한 진액인 마늘과 쑥을 먹으며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었을 뿐 아니라 또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인간상을 최고의 이상적인 리더로 꼽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으슥한 곳에 숨어 남의 생명이나 노리는 호랑이와 같은 성정의 사람은 결코 그들이 지향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고, 햇빛 없는 굴속에서 일백일을 견뎌야 했다는 것은 동물적 본능을 제어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바로 내 자신의 내면에 과연 <영혼의 빛>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였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또한 한 나라와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란 다른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출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인식, 이런 것들이 이를테면 단군설화의 심층구조 속에 내재된 우리 선조들의 인간관이자 세계관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로 타올라야 합니다. 그게 곧 하늘을 여는 길이고 우리 교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개천절은 <하늘의 열림>을 기리는 날입니다. 

제발 이 어두운 시대를 위해 다시 한 번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이 활짝 열리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