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40914n 남은 자(습 3:14-20)

20140914n

습 3:14-20

남은 자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남왕국 유다가 므낫세라는 악명 높은 왕의 폭정으로 나라 전체가 깊이 병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형국이 므낫세의 아들 아몬 왕을 거쳐 요시아 왕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이 넘도록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니 나라 꼴도, 백성의 신앙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태양신을 두고 예배했으니 말 다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50년이 넘도록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유다에도 소수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런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 했습니다. 총체적으로 나라가 거덜 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중에도 신앙의 정절을 지킨 소수의 남은 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남은 자들마저 인내의 한계심을 느끼며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어깨를 늘어뜨리지 말라, 좌절하지 말라, 기운을 내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도 어느 날 하나님께 절망적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섬기는 사람 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제 저도 지쳤으니 차라리 저를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내가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칠천을 예비해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너 같은 사람이 아직 칠천이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바냐 시대의 남은 자들처럼, 차라리 죽여달라고 떼를 쓰던 엘리야처럼 우리도 이젠 많이 지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주 좌절하고,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늘어뜨린다는 겁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이 오늘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남은 자들이여 두려워하지도, 낙심하지도, 손을 늘어뜨리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심지어는 14절을 보면 노래하라고 하시며 전심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은 무슨 근거로 우리 남은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먼저, 우리 남은 자들은 다 용서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어깨를 늘어뜨리면 안 됩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우리가 자주 좌절하고 절망하는 진짜 이유는 사실 환경 때문이 아니고 다 죄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죄 때문에 위축되고, 비겁해지고, 용기를 잃습니다. 그래서 천둥 치고 번개 치면 무슨 죄를 지었나부터 생각납니다. 졸지에 무슨 변을 당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변을 당하냐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죄와 형벌을 제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언제 우리의 죄악을 사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에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도 전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듣도 보도 못했을 때, 우리가 내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기도 전에, 주님이 일방적으로 내 죄와 형벌을 사해주셨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남은 자들은 늘 기뻐하고 감사해야 옳지,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겁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죄 용서는 회개의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아닙니다. 우리의 헌신이나 충성의 대가나 믿음의 반대급부가 아닙니다.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선물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회개해서 죄용서 받았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울며불며 회개한 날은 죄용서의 날이 아니라, 내가 이미 죄사함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최초로 깨닫고 감격해 한 날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성취하신 죄사함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감사한 날입니다. 죄사함과 구원은 주님의 주권적인 긍휼이요 일방적 은혜이지 절대 회개의 산물이 아닙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 남은 자는 아무리 세상이 갈 때까지 가더라도 좌절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즐거워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죄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죄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는데 다른 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죄용서를 받았다는데도 끝까지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가 정말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열악한 처지와 환경에서도 오히려 노래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다음은 여호와께서 남은 자들 가운데 함께 하심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7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어린아이는 부모와 함께 있으면 절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상을 두려워해서 무서워 떨거나 좌절하여 손을 늘어뜨린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신명기 32장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되 눈동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했습니다. 완벽하게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절대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틴 루터도 자주 좌절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온 세상이 가톨릭 세상인데, 홀홀 단신으로 그 거대한 가톨릭을 상대로 개혁의 기치를 올렸으니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래서 자주 절망하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루터의 부인이 카타리나입니다. 하루는 루터가 잔뜩 어깨를 늘어뜨리고 왔는데 카타리나가 검은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누가 세상을 떠났느냐고 묻습니다. 카타리나는 태연히 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루터가 무슨 망발이냐며 호통을 치자, 카타리나는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다면 왜 그렇게 당신은 낙심천만합니까?고 반문합니다. 거기서 루터가 한 대 얻어맞습니다. 하나님이 안 돌아가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남은 자와 함께 계시다면 좌절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자요 전능자인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왜 그렇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사십니까? 포기하십니까? 다윗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분명 주님은 이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깊이 신뢰하고 담대하십시오. 슬픈 표정 짓지 마십시오. 더는 어깨를 늘어뜨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두려워하거나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17절 하반절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것이야말로 정말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내가 뭐라고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즐거워 노래까지 부르신다는 말씀입니까? 세상에 어디 사랑할 사람이 없어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랑하시는 것인가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황송 무지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진실입니다. 주님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우울하고 낙심천만하게 삽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주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못마땅하십니까?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주님만 우리를 짝사랑하게 해야합니까? 우리는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한 절대 절망할 수 없습니다. 쉽게 허무하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 20절이 결론입니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를 용서하시고,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때에 나를 이끌고, 우리를 모으고, 사로잡힘에서 돌이키고, 천하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때는 가장 적절한 때, 주님이 예정하신 때입니다. 그때까지 인내하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처지에서 어떤 고민으로 좌절하고 계십니까? 그때까지 힘을 내십시오. 그때가 되면 주님이 이끄십니다. 모으시고, 놓여나게 하시고,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십니다. 다시 한 번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주님의 뜨거운 음성을 다시 들으시고 기운을 얻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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