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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분노</p>
<!-- paragraph:p0002 -->
<p class="p1">렘 12:14-17</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lt;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음이니라&gt;(13절).</p>
<!-- paragraph:p0005 -->
<p class="p1">여호와가 당신의 백성에 대해 분노하시면 뭐든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고 죽도록 수고를 해도 아무런 소득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수치만 당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lt;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gt;(시 7:11).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노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이자 복음의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lt;사랑&gt;에 앞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lt;분노&gt;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lt;사랑의 하나님&gt;만을 아는 것은 그야말로 &lt;절반의 하나님&gt;만을 아는 것입니다. 보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lt;사랑의 하나님&gt;이시면서 동시에 &lt;분노의 하나님&gt;이시라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뽑아내리라</p>
<!-- paragraph:p0008 -->
<p class="p1">&lt;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대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내리라&gt;(14절). </p>
<!-- paragraph:p0009 -->
<p class="p1">하나님의 분노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뿐 아니라 이방나라들에게도 미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을 섬긴 택하신 백성 유다를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 바벨론을 들어 뽑아내셨을 뿐 아니라 유다를 내친 그 바벨론도 결국은 뽑아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p>
<!-- paragraph:p0010 -->
<p class="p1">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분노의 회초리로 이용됐다 하여 바벨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 역시도 반드시 뽑아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주권은 역사와 이방민족의 운명까지도 다 관장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뽑아내시는 심판과 분노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lt;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시고&gt;(15절), &lt;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게 하려는&gt;(16절) 은혜와 구원에 그 최종 목적이 있음을 꼭 기억하십시오.</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멸하리라</p>
<!-- paragraph:p0013 -->
<p class="p1">&lt;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gt;(17절).</p>
<!-- paragraph:p0014 -->
<p class="p1">구원을 목표로 삼되 이방족속들이 끝까지 순종하지 않고 복음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배척하고 우상을 고집하면 하나님은 그 나라를 뽑아 영원히 멸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lt;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gt;(마 10:26)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히 멸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키엘케고르는 &lt;두려움과 떨림&gt;을 성서적 실존의 중요한 특징으로 규정하고 이를 자신이 쓴 책의 표제로 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세상을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는 것은 우리를 지옥에 멸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을 제대로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즉 이는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을 의식하고 살면 세상이 주는 상대적인 두려움 쯤은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