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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너희 중에 반역자가 있도다!(렘 1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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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너희 중에 반역자가 있도다!</p>
<!-- paragraph:p0002 -->
<p class="p1">렘 11:9-17</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lt;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gt;(9절) 반역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반역자는 항상 &lt;너희 중에&gt;, &lt;택하신 백성 중에&gt; 있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을 향해 &lt;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gt;(마 26:2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lt;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gt;(마 26:24)고 하셨습니다. 반역자, 배신자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가장 깊은 제9층에는 다 배신자, 반역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천사 루시퍼와 주님을 배신한 가룟유다, 율리우스를 배신한 브루투스 등이 다 그곳에 있습니다.</p>
<!-- paragraph:p0005 -->
<p class="p2"><br></p>
<!-- paragraph:p0006 -->
<p class="p1">보라,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p>
<!-- paragraph:p0007 -->
<p class="p1">&lt;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gt;(11절).</p>
<!-- paragraph:p0008 -->
<p class="p1">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은 누구도 피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lt;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gt;, &lt;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gt;(12절)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재앙은 평소 하나님을 반역하지 않음으로 재앙을 자초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법입니다. 매를 스스로 벌지 않아야 합니다. 우상을 좇는다거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유다와 예루살렘은 &lt;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으므로&gt;(10절) 더 이상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너는 이 백성을 위해 구하지 말라</p>
<!-- paragraph:p0011 -->
<p class="p1">&lt;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gt;(14절).</p>
<!-- paragraph:p0012 -->
<p class="p1">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7장 16절에서도 하나님은 이와 꼭 같은 말씀을 하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대목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후의 희망이요 최후의 보루입니다. &lt;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gt;(복음성가, 기도할 수 있는데).</p>
<!-- paragraph:p0013 -->
<p class="p1">그러나 남의 중보기도도, 또 고난에 처한 당사자의 부르짖음도 듣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진배없은 절망적인 선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황를 결코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최악의 절망적인 사태로 가서는 안 됩니다. &lt;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gt;(사 55:6). 부디 아직은 내 가까이에 계실 때, 아직은 기도하면 들어 주실 때, 아직은 회개하면 긍휼히 여기시며 용서해 주실 때, 부르짖으십시오.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게 아닙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