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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7m 몸으로(고전 6:15-16, 롬 12:1-2)

20140907m

고전 6:15-16, 롬 12:1-2

몸으로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6장 15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는 말씀이 나옵니다. 놀랍게도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 가운데 창녀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배 후에 창녀를 찾아간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도 불편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게 아주 예사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고린도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고대도시이면서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의 큰 항구도시입니다. 아테네에서 남쪽으로 7-80km 떨어져있습니다. 바울 시대만 해도 고린도가 헬라문화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고린도에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천 여 명의 미녀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 신전 창녀들이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창녀는 신전 창녀를 말합니다. 그 신전에서는 예배행위 자체가 그 신전에서 먹고 마시며 사제들과 음란행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문화에 익숙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불편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들의 이원론적 사고체계 때문입니다. 헬라사고는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를 칼처럼 구분합니다. 그래서 물질이나 육체는 부정적이고 악마적입니다. 정신이나 영혼이 참이며 진리이고 이데아의 세계입니다. 물질이나 육체는 그림자이고 어둠이며, 정신이나 영혼이 빛입니다. 가시적인 세계는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영혼의 세계, 정신세계가 참 진리의 세계입니다. 희랍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이 이원론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영혼으로 합니다. 그게 영적 예배입니다. 창녀를 찾아갈 때는 육체로 찾아갑니다. 창녀와 관계를 맺어도 자기 영혼이 더럽혀졌다거나, 신앙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과는 육체로 만나고, 교회에 나와서는 영혼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가치관은 짧은 인생 동안 영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육으로는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 게 행복한 것이고 지혜로운 삶이라는 인생관이었습니다. 


이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16절을 보면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몸>은 무엇입니까? 육체입니까? 살입니까? 아닙니다. 육체는 사르크스(sarx)이고, 몸은 소마(soma)입니다. 본문 이후에 이어지는 구절도 몸이 나옵니다. 로마서에도 나옵니다. 바울이 말하는 <소마>는 살이 아니라, 정신이나 영혼을 일컫는 프뉴마나 프쉬케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 <소마>입니다. 저는 몸이라는 말을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몸은 통전적이고 일원론적 개념입니다. 성경에서 몸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 사람 존재 전부를 말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만의 독특한 인간학적 개념입니다. 몸이 곧 사람이고, 존재입니다. 바울이 소마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여기에는 사람이란 절대 영과 육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편의상 구분하나, 실제로는 분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희랍사람들은 영과 육을 구분하지만, 성경의 전통은 육과 영을 서로 나누지 않습니다. 이 둘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 <몸>, 곧 <소마>입니다. 우리는 영과 육이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고, 함께 영생합니다. 영혼만 영생하지 않습니다. 영육이 함께 합니다. 헬라사람들은 영만 영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전인(全人)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도 온 몸으로 만나고, 창녀를 만나도 온 몸으로 만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로만 창녀를 만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몸과 몸의 만남,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창녀와의 만남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창녀와 관계를 맺는 자는 그와 한 몸이 된다고 바울이 말한 겁니다. 쾌락을 위해 육체적으로만 잠시 만난다는 사고방식에 바울이 쐐기를 박은 겁니다. 사람은 영과 육이 하나인 일원론적 존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일원론적 인간학의 핵심이 <몸>입니다. 영과 육은 언제나 같이 갑니다. 우리의 영혼만 구원받거나 영생하지 않습니다. 나는 절대 내 영혼은 팔지 않고 잠시 내 육체만 내줬을 뿐이다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일이 추석입니다. 내일 아침 차례상 앞에서 조상에게 절하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마음은 이게 아닙니다. 제 영혼은 아닙니다. 부득이하게 제가 육체로 절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은 몸으로 말하고, 몸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사랑하고, 몸으로 행동합니다. 입만 그렇게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분열증 환자입니다. 바울은 어디서나 몸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마지막 절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절). 로마서 12장 1절에서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제사도 제사 나름입니다. 제사에도 산 제사가 있고, 죽은 제사가 있습니다. 산 제물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바치면 산 제사이고, 죽은 제물을 죽은 조상에게 바치면 그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죽은 제물을 바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죽은 제물과 산 제물은 무엇입니까? 죽은 짐승의 고기 등입니다. 산 제물은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살아있는 몸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살아있는 존재를 바라십니다. 이것을 바치며 예배하면 산 제사입니다. 우리의 존재 전체를 진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영화를 누리십니다. 입으로만, 영으로만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존재 전부를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교회에서는 영으로 예배드리고, 세상에서는 육으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고린도 사람입니다. 온 몸으로 예배드리고, 온 몸으로 살고, 온 몸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을 다시 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주님이 몸으로 값을 주고 사셨다고 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여러분의 몸을 드리는 산 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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