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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받아 선포할 자가 누구인가?(렘 9:12-16)

말씀을 받아 선포할 자가 누구인가?

렘 9:12-16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그 물음 앞에서 바르게 응답해야 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사야를 향해서도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6:8)하고 물으셨는데 이사야는 즉각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며 결단했습니다. 이 시대 우리들도 그렇게 응답해야 합니다. 이사야처럼 예레미야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그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 선포>했던 예레미야의 예언을 봅시다.

 

쑥을 먹이리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15절).

쑥은 씁니다. 즉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마음이 완악하며 바알을 섬길 때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반드시 쑥을 먹이시고 독한 물을 마시게 하사 큰 고통을 당케하신다는 것입니다. 쑥은 입에만 쓰지만 쓴 물은 속을 다 뒤집어 놓습니다. 속까지도 쓰리고 아픈 꼴을 겪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쑥은 약입니다. 입에는 몹시 써서 고통스럽지만 몸에는 이로운 게 바로 쑥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역시 꼭 그와 같습니다. 아프고 쓰리고 고통스럽지만 궁극적으로는 쑥처럼 유익하고 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로 쑥을 먹이시고 때로 독한 물도 마시게 하시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고통하며 죽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약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랑하시는 자에게 쑥 같은 징계를 허락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히 12:6).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칼을 보내리라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16절).

주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그렇습니다. 칼 앞에 서면 우리는 누구나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반드시 찔림을 예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선택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비록 그 음성은 부드럽지만 실로 그것은 칼 끝에 목을 내대는 선택에 다름 아닙니다. 즉 결단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베겠다는 경고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이렇게 <날선 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타락한 양심을 찌르는 칼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허위와 위선의 철책을 단호히 해체하는 칼입니다. 사랑이 식은 가슴에는 차가운 심장을 도려내는 칼이요, 악한 마음을 품은 자 앞에서는 그 사람의 골수를 찔러 쪼개는 비수입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 시대 유다 백성이 그랬듯 이 시대 우리들도 하나님이 보내시는 칼의 존재를 언제나 잊고 살아갑니다. 부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 녹슨 시대의 양심과 거짓된 영혼을 향해 날아가 꽂히는 예리한 칼이 됩시다. 주님의 칼이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메스인 것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