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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7n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후 3:12-17)

20140817n

딤후 3:12-17

너 하나님의 사람아!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17절을 다시 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은 성경에 많이 나올 것 같지만 흔한 말이 아닙니다. 신약에는 2번만 나옵니다. 한 번은 오늘 본문에, 또 한 번은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 나옵니다. 두 번 다 바울이 사용했고,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 칭호는 매우 영예롭습니다. 그런데 실은 디모데뿐 아니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바울이 우리를 부른다면,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고 부를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에게 바울이 준 영성훈련을 위한 권면입니다. 또한 바울이 우리에게 준 영성훈련의 권면입니다. 

우선, 14절입니다. “너는 배우고.” 이게 원어로는 다 명령형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영성훈련의 첫 번째 지침입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배워야 합니까? 세상에는 경전, 고전, 양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교양, 지식, 정보는 주지만, 구원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세상의 많은 책들이 우리의 영혼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영성훈련의 참된 교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을 위해서는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너의 영성을 위해 먼저 성경을 배우라’는 겁니다. 그래야 영혼이 산다는 겁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구원의 길을 안내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게 하는 책은 성경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교양서적이나 신간서적, 전문서적은 보지 않더라도 성경은 반드시 봐야 합니다. 성경이 믿는 자들의 액세서리가 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구원받는 지혜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를 보면,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주님의 창작입니다. 픽션입니다. 거기 보면 부자는 죽어서 지옥으로,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 깁니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합니다 지옥으로 간 부자가 고통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하기를 저 세상에는 내 형제들이 아직 있습니다. 그러니 나사로를 보내 내 형제들 만큼은 이렇게 고통스런 곳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대답입니다.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저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다고 합니다. 즉 성경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은 모세와 선지자의 글입니다. 그러니까 부자가 말씀으로는 안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서 가서 얘기하면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모세와 선지자를 안 믿으면 죽은 자가 살아가도 믿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 천국 가기에 합당한 지혜를 얻는 데는 성경이 유일합니다. 주님은 성경 외에 어떤 가이드북도 없다고 합니다. 영성훈련, 경건훈련의 유일한 텍스트가 성경이란 사실을 확신하시고 보다 진지하게, 깊이 듣고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양분을 공급받아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다음은 확신하라입니다. 배움과 확신은 공식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배우면 말씀에 대한 신뢰가 생깁니다. 왜냐면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불신하거나 회의하는 것은 말씀을 어설프게 알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은 정직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육성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접하거나 듣지 않아서 그렇지 제대로 배우면 말씀에 대한 신뢰가 생깁니다. 확신 없는 신자보다 더 딱한 사람은 없습니다. 확신이 없으면 늘 불안정하고 힘이 없습니다. 확신은 거저 오지 않고 반드시 말씀을 성실히 공부하고 연구할 때 내 안에 각성됩니다. 그래서 배움과 확신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왜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마귀를 제압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더욱 진지하게 들어서 깊은 신뢰를 갖고서 누구보다 신앙생활 잘 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거하라입니다. 확신한 말씀 속에 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다 말씀의 화신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 다니는 주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체적인 주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통전적인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됩니다. 말씀 안에 거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게 차원 높은 성화된 삶입니다. 성화된 삶이란 그만큼 주님의 말씀과 내 존재의 합일입니다. 말씀과 내 삶의 일원론입니다. 통전적 일체입니다. 


이번 주말에 우리가 신앙수련회를 갑니다. 결국 이것은 다 이러한 영성훈련을 위한 것입니다. 이번 신앙수련회가 깊이를 더하여 우리 삶이 성숙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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