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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40810m 이삭과 이스마엘(롬 9:7-21) 광복기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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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810m</p>
<!-- paragraph:p0002 -->
<p class="p1">롬 9:7-21</p>
<!-- paragraph:p0003 -->
<p class="p1">이삭과 이스마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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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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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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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지난 7월 8일에 이스라엘 미성년자 3명을 팔레스타인 인이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가 팔레스타인 간의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8월 8일 현재, 팔레스타인 인은 1870명이 사망했습니다. 대부분 민간인입니다. 980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태국인 1명을 포함해 민간인 3명, 군인 64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이집트가 중재에 나서 72시간 휴전을 했습니다만, 그 시간이 끝나자마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25발의 로켓포를 발사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즉각 공습과 포격으로 반격했습니다. 세계가 걱정하는 것은 장기전이나 전면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가자지구는 잘 아시는대로 팔레스틴 남단에 있습니다. 이집트와 국경을 이루고 있고, 지중해도 끼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입니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 안에 살면서 자기들의 수반도 세워 자치를 유지합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안에 있는 무장단체이자 정파입니다. 팔레스타인 의회의 총 의석수는 132석인데 하마스가 73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1당입니다. 야신이란 사람이 1974년에 처음 당을 만들었고, 야신이 지난 3월 2일에 이스라엘 헬기가 쏜 미사일을 맞아 죽었습니다. 이번에 3명의 이스라엘 인을 살해한 것도 그 보복이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정당이 2개있습니다. 하나는 온건파인 파타흐 당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전선(PLO)의 후신입니다. 아라파트가 죽고 강경파인 하마스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하마스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입니다. 호전적입니다. 하마스의 주 무기가 자살테러입니다. 이스라엘은 절대 그냥 두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당하면 즉각적으로 보복합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의 빌미를 하마스가 일으킵니다. 대신 하마스는 큰 상처를 입습니다. 그럼에도 하마스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사상자나 부상자 수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아마 주님이 오셔야 끝날 것입니다. 왜 저 사람들이 싸웁니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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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이스라엘은 주후 70년에 로마에 망합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 쫓아냅니다. 디아스포라가 된 겁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고 UN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의 영유권을 인정 받습니다. 나라 잃고 온갖 설움을 당하고 히틀러에게는 600만이나 죽임을 당하면서 팔레스타인으로 복귀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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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팔레스타인은 로마에 이스라엘이 망하자 아랍 사람들이 그 땅에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없는 동안 20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을 실효 지배했습니다. 비록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유권을 인정했지만,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UN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그들이 이스라엘이나 서방을 상대로 전면전을 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테러를 하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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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의 뿌리는 2000년 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된 4000년 전 아브라함 시대까지 소급됩니다. 본문을 보면 이삭이 나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독자입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비록 첩 하갈에게서 얻은 자식일지라도 아들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할 때 아브라함이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삭이 너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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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5 -->
<p class="p1">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지금 팔레스타인의 원조입니다. 이삭의 후손은 이스라엘이고, 이스마엘의 후손은 아브라함에게 쫓겨나 지금도 광야 사막에서 살고 있는 아랍 사람이 팔레스타인입니다. 지금은 가자 지구에 격리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조상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고 하고, 팔레스타인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은 이스마엘이 신봉하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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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7 -->
<p class="p1">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기 자식으로 생각했는데, 왜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만을 아브라함의 자식으로 간주하실까요? 이스마엘은 첩의 아들이고, 이삭은 정실의 아들이어서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뭡니까?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합니다. 8절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녀요,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했지만 에서는 미워했습니다. 본문 11절 이하입니다.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에서가 나쁜 일을 한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야곱은 택하고 에서는 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 배에서 나온 쌍둥이인데 약속의 아들이냐 아니냐가 에서와 야곱을 가릅니다. 이처럼 이삭과 이스마엘도 나뉜 겁니다. 우리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탐내 끊임없이 싸워 이겼기에 야곱이 에서를 제쳤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다는 아닙니다. 집요하고 지독하게 굴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차남이 장남된 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이 택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겁니다. 자발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입니다. 야곱도 지독해서가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남보다 좀 나아서 하나님이 택하신 게 아닙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선과 악을 행하기도 전에, 우리 키를 재보시기도 전에,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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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똑똑해서, 열정적이어서 이방을 위한 전도자로 세우심을 입은 게 아닙니다.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회개는커녕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도중에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당했다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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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에게 내리는 최후의 복을 훔친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사건입니까? 아니면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속아준 사건입니까?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인 게 아니라,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속인 사건입니다. 이삭이 에서와 야곱을 낳은 때가 그의 나이 60세입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려고 한 때는 야곱 나이 20세 전후입니다. 즉 이삭 나이 80세쯤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야곱에게 속은 후 100세를 더 살아 180에 소천합니다. 180세까지 산 이삭이 80세쯤에 아무리 감각이 둔했다 한들 어떻게 야곱과 에서를 구분하지 못했겠습니까? 야곱의 연기를 보면 얼마나 어설픈지 모릅니다. 염소 잡아서 사냥해 온 고기라 하고, 염소 가죽을 감아 털이 난 몸이라고 합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자기가 완벽하게 아버지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에서에게 내리는 최후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어떻게 염소털과 사람털이 같습니까? 저도 세례 때 머리를 짚어 보면 가발인지 아닌지 딱 감이 옵니다. 어떻게 염소 고기와 산짐승 고기가 같습니까? 닭고기와 꿩고기는 다릅니다. 멧돼지와 집돼지 고기는 다릅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이 속습니다. 저는 야곱이 아니라 이삭이 야곱을 속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야곱은 자기가 아버지를 속였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삭은 이미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이삭은 안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에게 내리는 축복을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내립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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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여러분, 적자냐 서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셨느냐 택하지 않으셨느냐입니다. 이게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에서가 야곱보다 못한 게 무엇이 있습니까? 에서가 남자다워서 이삭은 그를 좋아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팥죽 쑤는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에서보다 야곱을 택하셨을까요? 영원한 수수께끼입니다. 저는 가끔 일본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살고 교양 있어 보이는데 왜 그들보다 하나님은 우리 한국 사람을 고집하실까요?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욕보이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p>
<!-- paragraph:p0024 -->
<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본문 14절 이하가 답을 제시합니다.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20절 이하도 보십시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엿장수가 1분에 가위를 몇 번 치든 그것은 순전히 엿장수 마음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무슨 그릇을 만들든 그것은 토기장이의 주권입니다. 따라서 왜 나는 개밥그릇으로 만들고, 나는 뚝배기이며, 왜 나는 구워내자마자 깨뜨리느냐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권한입니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일본 사람보다 지지리 궁상인 우리나라 사람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 마음입니다. 이점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항의나 회의보다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잘 난 사람 두시고 굳이 못난 나를 택하신 것은 이유나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선택의 권한을 바르게 이해하여 더욱 성서적인 해답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p>
<!-- paragraph:p0026 -->
<p class="p1"><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br></p>
<!-- paragraph:p002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Ul6mqv8cZvc"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