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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5월 4일 주일 찬양예배<br>본문: 딛 2:4-5<br>제목: 자녀사랑</p>
<!-- paragraph:p0002 -->
<p>[4]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p>
<!-- paragraph:p0003 -->
<p>본문 4절을 보면,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디도가 그레데, 지금의 크레타 섬에서 목회했는데, 그에게 보낸 권면의 말씀입니다.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한 말씀인데, 이 말씀에는 왜 자녀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이 절대적이고 필수적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가르침이 있습니다.</p>
<!-- paragraph:p0004 -->
<p>왜 어머니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필수불가결합니까? 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도에게 젊은 여자들을 잘 가르쳐 자녀들을 사랑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근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다 상대적입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야 나도 사랑하며, 나를 미워하면 나도 미워합니다. 내게 도움이 되어야 나도 사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냉정히 돌아서거나 원수를 맺기도 합니다. 세상 사랑은 철저히 조건적입니다. 나라 사랑도 마찬가지고, 친구 간의 사랑도, 부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어야 사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그 사랑을 철회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장삿속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입니다. 그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만큼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깝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조건반사적으로 사랑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망가진 죄인들인데, 그 무엇도 기대하시지 않고 무조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디도에게 바울은 그런 사랑으로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고 남편을 더 위하라고 하며, 또 그렇게 교육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만일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나마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를 순화하고, 우리 사회를 보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정도라도 윤리가 살아있고, 질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들은 모두 하나님 사랑의 중보자들입니다. 어머니는 그 고유한 모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랑의 증거자들입니다. 따라서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치 못하는 자녀들은 불행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사랑의 중보자라는 신성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p>
<!-- paragraph:p0007 -->
<p>그런데 본문 4절에 나오는 ‘사랑’은 좀 뜻밖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어휘가 있습니다만, 보통 이럴 때는 ‘스톨게’ 라는 말이 쓰이는데, ‘필레오’ 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필레오는 우정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할 때 필레오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맹목적이고 본능적 사랑인 스톨게가 아니고, 자식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우정같은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머니들에게 필레오를 주문하는 것은 아버지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입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대화가 잘 안 됩니다. 진심으로 같은 눈높이에서 자녀들의 갈등을 접수해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머니에게 자녀들의 친구가 되어주면서 사랑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진정한 대화 파트너가 되라는 겁니다. 어머니가 자녀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울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8 -->
<p>자녀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녀들과 함께 울고 웃는 엄마가 되지 못하면 이것은 문제입니다. 자녀들을 필레오로 대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대하듯 하십시오. 이것이 성경이 주문하는 어머니의 자녀사랑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제대로 자라며, 정서에 그늘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빠 엄마가 둘 다 엄격하면 아이들의 숨쉴 공간이 사라집니다. 아빠는 좀 권위적이더라도 엄마는 자녀들의 친구가 되라는 겁니다. 성경이 왜 엄마에게 스톨게가 아니라 필레오를 요구하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p>
<!-- paragraph:p0009 -->
<p>또 하나는 엄마의 자식 사랑의 최선의 실천은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 없는 자식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주님을 모르던 우리 조상들도 새벽마다 정한수 떠 놓고 아이들의 안녕과 성공을 위해 천지신명께 빌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사랑한다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와 이교도들을 막론하고 부모들의 자녀사랑의 최대 표현은 기도였습니다. 가장 불행한 자녀는 엄마의 기도 없이 자란 자녀입니다. 한나의 기도 없는 사무엘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유니게의 기도 없는 디모데, 모니카의 기도 없는 어거스틴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수잔나의 기도 없이 웨슬레가 존재했겠습니까? 기도로 키운 자식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모니카 만의 좌우명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엄마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해야 할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까? 자녀들을 위한 기도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녀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자녀사랑을 돈이나 말로 떼우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보다 더한 엄마의 사랑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엄마는 평생 자녀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도에게 엄마들을 교육시켜서 자녀들을 위해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자녀사랑의 최고인 기도를 통해 더욱 자녀들의 안녕과 장래를 주님께 간구하는 최선의 사랑의 실천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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