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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40727m 기도의 전설(왕상 18: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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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20140727m </p>
<!-- paragraph:p0002 -->
<p class="p1">왕상 18:30-46</p>
<!-- paragraph:p0003 -->
<p class="p1">기도의 전설</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마차 탄 사람과 뜀박질하는 사람이 대결하면 당연히 마차 탄 사람이 이깁니다. 그런데 본문은 마차를 탄 아합이 지고 맨발로 빗속을 달린 엘리야가 이겼습다. 46절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갈멜산에서 이스르엘까지 22km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엘리야가 아합왕의 마차 앞에서 뛰었습니다. 왜냐면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3년 6개월 동안 비 한방울 오지 않던 땅에 자기가 기도해서 지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들린 듯이 달린 겁니다. 46절 상반절은 여호와의 능력이 임해서 그렇게 뛰엇다고 합니다. </p>
<!--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엘리야는 비뿐 아니라 하늘에서 불도 내린 사람입니다. 우리는 엘리야를 흔히 불의 사자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천국갈 때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직행한 사람입니다. 전설적인 사람입니다. 본문 37절을 보면 간절히 불을 구합니다. 이어지는 38절을 보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다고 합니다. 인위적으로 물을 길어다 퍼붓고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한 겁니다. 그런데 불이 내려와 도랑의 물까지 다 말려버렸다고 합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함께 대결하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바알이냐 여호와냐, 누가 참 신이냐는 대결에서 엘리야가 이깁니다. </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오늘 본문 앞에 보면 과부의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기도해서 살렸습니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도 기도해서 살립니다. 정말 엘리야는 기도의 전설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수많은 기도의 선진이 나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기도해서 때로는 불, 때로는 비,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빈 병에 기름을 채우기도 하고, 통에 가루를 채우기도 했을까요? 엘리야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기도의 방식은 무엇입니까?</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우선 엘리야는 기도에도 사전 정지작업이 있다고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충족해야 할 전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가 제시한 사전 정지작업의 첫째는 무너진 제단 수축입니다. 30절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다는 것은 그동안 소홀했던 제사, 방치해서 황폐해진 예배를 복원했다는 뜻입니다. 유다는 그동안 제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안 드렸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미혹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문을 닫으신 겁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오면 난리가 날 겁니다. 그런데 그 고대시대에 비 한 방울 안 왔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가? 엘리야는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백성을 모아 무너진 제단부터 수축합니다. 정말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란다면, 상실한 예배부터 되찾으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입니다. 우리의 최선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형식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 한 주간 살아가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우습게 알지만, 하나님은 우리 예배를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한 주간 살면서 하나님 생각하십니까? 예배드리는 한 시간 만큼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교회는 그런 장소요, 예배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입니다. 예배할 때 우리가 찬송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배 이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방도는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은 우리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예배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겁니다. 기도응답이란 것은 우리가 바치는 최선의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메아리입니다. 기도응답은 우리가 누릴 최선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우리가 기꺼이 올리면 그 예배를 받고 흐뭇해 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최상으로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무너진 제단의 복원은 필수입니다. 기도의 대가요 전설인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제시한 사전 정지작업 그 첫 번째가 무너진 제단 수축입니다. </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두 번째는 죄악 척결입니다. 40절입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당시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을 벌였던 우상 사제는 850명이었습니다. 바알 선지자 450,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엘리야가 이겼습니다. 이긴 후에 명령하기를 한 명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기손 강가에 가서 다 죽였습니다. 끔찍하고 과격합니다. 우상의 사제 850명이 한 자리에서 죽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을 얻으려면 악을 척결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 사이에 악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엘리야의 판단도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우상과 우상의 사제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당시 기손 시내가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을 겁니다. 끔찍한 노릇이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막힘없이 우리의 간구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죄악이나 허물이 해소되어야 주님과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성령과의 교감이 가능해집니다. 죄악에 대한 과감하고도 철저한 척결이 있을 때 우리가 비를 구하면 비를, 불을 구하면 불을, 기름을 구하면 기름을, 통에 가루를 원하면 가루를 주십니다. </p>
<!--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이렇게 사전 정지작업이 끝납니다. 이후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왜 산꼭대기에 올라갑니까? 이것은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구별된 장소로 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기도를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것은 구별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가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p>
<!-- paragraph:p0018 -->
<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엘리야의 기도의 특징은 절대 모호하거나 애매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어디를 봐도 구체적입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를 쓰지 않습니다. 불을 주십시오. 비를 주십시오. 기름을 주십시오. 죽은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이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가 애매합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제발 기도할 때 시 쓰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추상적이면 응답도 추상적입니다. 기도가 철학적이면 응답도 철학적입니다. 기도가 범우주적이면 응답도 범우주적입니다. 확실한 가사전달이 되게 하십시오. 저는 실제 기도원에서 그런 분을 봤습니다. ‘이 나라를 제게 주십시오.’ ‘이 세계를 제게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수는 있으나, 아무나 그렇게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돈 100만원이 필요하면, 100만원이 필요하다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콕콕 집어 기도하는 겁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특징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런 반론을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 필요를 다 아시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알아서 채우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 후에 필요를 채우십니다. 하나님이 내 사정 다 아신다고 하면서 기도 안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다 아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니까?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압니다. 하나님이 먼저 알아서 다 해주시면, 절대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조상 탓으로 돌립니다. 인간이 사악해서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서가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기도하게 한 다음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햇빛이니 공기, 대지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감사합니까?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베푸시면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 안 한 사람만 손해입니다. 여러분도 꼭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비 달라, 건강 달라, 내 자식 대학 붙게 해달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p>
<!-- paragraph:p0020 -->
<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다음으로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42절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제 생각은 엘리야쯤 되면 높은 산에 올라가 하나님 하면 나 여기 있다고 하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의 전설이라는 엘리야의 기도 자세를 보십시오. 높은 산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그 무릎 사이에 자기 머리를 집어넣었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대개 유대인은 눈을 뜨고 서서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전설 엘리야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높은 산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그 무릎 사이에 자기 머리를 틀어박습니다. 요가하는 사람도 이런 자세를 잡기 힘들 겁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 겁니까? 우리는 삽 들고 가서 땅을 파고 머리를 묻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원하시면 간절히, 처절하게 온몸으로 기도하십시오. 더는 혀나 입으로 기도하지 마십시오. 다 요식입니다. 다 남 들으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입니다. 주님의 기도모습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도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간절한 기도가 주님 앞에 상달되고, 처절한 기도가 주님의 심금을 울립니다.</p>
<!-- paragraph:p0022 -->
<p class="p2"><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엘리야의 기도는 확신에 찬 기도입니다. 41절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이미 비 주십사는 기도 전에 귀로는 비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기도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런 확신을 갖고 기도해야 먹힙니다. 이런 기도가 응답됩니다. 얼마나 확신에 넘쳤으면 채 기도하기 전인데 장대비 소리를 듣습니까?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이미 패배주의입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확신에 차서 기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미 패배주의요 회의주의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응답이 안 되는 게 맞습니다. 되면 실수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는 이미 패배주의에서 출발합니다. 비 내려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며, 귓전에 빗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기도응답되는 게 이상한 것입니다. 기도응답 안 되는 게 정상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우리에게 제시한 기도의 모범을 놓치지 마십시오. </p>
<!-- paragraph:p0024 -->
<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엘리야는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43절입니다.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은 만수입니다. 바다에 구름이 떠오르기까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한은 응답받을 때까지입니다. 우리는 내가 플랜을 짭니다. 이때까지 응답해 주십시오. 그때까지 응답 안 해주시면 기도를 접습니다. 이게 잘못된 겁니다. 전체 그림을 보시는 하나님은 내 판단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시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내가 맞춰야 합니다. 내 플랜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윽박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내가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일곱 번까지입니다. 응답해 주실 때까지입니다. 나는 천지분간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우리의 판단이란 게 우스운 겁니다. 하나님의 판단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해 기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p>
<!-- paragraph:p0026 -->
<p class="p2"><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엘리야의 기도에서 도전을 받고 배우며 흉내냅시다. 우리가 다 엘리야의 후예가 됩시다. 기도함으로써 잃었던 것을 회복하고, 새 사람이 되어 새 인생을 사는 복된 인생, 복된 가정이 됩시다.</p>
<!-- paragraph:p0028 -->
<p class="p1"><br></p>
<!-- paragraph:p0029 -->
<p class="p1"><br></p>
 <!-- paragraph:p0030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ArJnWc2ssZQ"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