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눈이 있어도 귀가 있어도(렘 5:20-31)

눈이 있어도 귀가 있어도

렘 5:20-31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이사야 선지자 역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6:9).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도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21절)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는 눈과 귀는 다 영적인 눈, 영적인 귀를 말합니다. 영혼의 눈과 귀를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신령한 영혼의 눈과 귀가 열리지 않으면 신령한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하나같이 영의 눈과 귀가 닫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시고 계시를 주셔봤자 그게 제대로 전달될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계속 당신의 종 예레미아를 통해 선포하시고 공포하셨습니다.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26절). 

그들은 악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여 번창하고 또 거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덫 중에서도 가장 교활한 덫은 바로 새 사냥 덫입니다. 새는 예민하여 여간해서는 덫에 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만큼 치밀하고 완벽해야 하는데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그런 새잡이 덫으로 다른 사람들을 잡으려 매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유다나 이방인들의 삶의 행태나 사실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찌고 윤택하며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한다>(28절)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는 눈도 귀도 다 가려놓고 세상에 대해서는 온갖 악한 의지를 다 동원하여 오로지 번창하고 출세하고 거부가 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난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부요한 영적 소경, 영적 귀머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31절).

선지자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 바로 그것인데 예레미야 시대 유다 백성들을 향해 예언한 선지자들 중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뭘까요?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 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다>(6:14-15).고 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 선지자들의 평강 메시지는 백성들을 죽이는 메시지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참 선지자는 아프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를 가감없이 선포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예언을 듣기 싫어하며 외면하고 박해하고 대적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오죽하면 참 선지자로서 끝까지 하나님의 징계를 선포하며 고독 속에서 사역한 예레미야 선지자가 결국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참 선지자의 최후 운명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어떨까요?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에 갑자기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거짓 선지자들의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거짓 예언에 속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