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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0m 초보를 버리라!(히 6:1-8)

20140720m

히 6:1-8

초보를 버리라!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본문은 어렵지만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1절 이하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기본적인 기독교 진리에 대해 기초반에서 날마다 터만 닦지 말고, 이제 도의 초보를 버리고 중급반, 고급반으로 진급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앞 부분인 5장 마지막 대목입니다. 12절 이하입니다.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이 또한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이제는 선생이 되지 초등학생의 유치한 수준에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수 년 수십 년 믿었어도 날마다 초급반입니다. 다 선생이 되어야 마땅한데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면서 던진 오늘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4절 이하입니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씀이 히브리서 10장에도 나옵니다. 여기서는 이런 죄를 짐짓죄라고 합니다. 26절 이하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짐짓죄가 무엇입니까? 진리를 아는 지식을 알고 난 후 범하는 죄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본 다음에 범하는 죄입니다. 죄인 줄 모르고 짓는 죄가 아니라 죄인 줄 뻔히 알고도 짓는 죄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것인 줄 알고도 짓는 죄입니다. 시편 19편에서는 고범죄라고 했습니다. 짐짓죄, 고범죄를 지으면 본문 6절은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10장 27절도 마찬가집니다. 6장 하반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께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요,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은혜요 은사이기에 그 어떤 죄도 하나님의 은혜를 무효화할 수 없다고 말씀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짐짓죄, 고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 이 죄가 우리에게 심각한 주제가 됩니까? 지금 우리가 범하는 죄가 다 짐짓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알고 죄 짓습니다. 우리가 범하는 죄는 다 고범죄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어쨌든 본문에서는 짐짓죄를 지으면 다시는 회개함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저의 친구 가운데 하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저와 잘 놀다가, 이 친구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우등생이 되었습니다. 그럴 친구가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1학기말 성적표를 갖고 집에 가니 아버지가 째려보다가, 갑자기 자기를 들어 창밖으로 던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엉덩이로 떨어져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밖으로 던짐을 당할 때, 다음 학기에 이런 성적 들고 오면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친구 아버지가 창밖으로 자식을 죽으라고 내던졌겠습니까? 아닙니다. 자식을 때리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리면 속상하기 때문입니다. 때리는 부모가 진짜 부모요, 좋은 부모입니다. 니 인생 니가 알아서 하라는 부모는 못난 부모요 무책임한 부모입니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너 미워한다는 말은 이웃집 아저씨의 말입니다. 야 이놈아 너 그렇게 공부할 거면 나가 죽으라는 말은 부모의 말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집니다. 성경에는 아름다운 말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도 험악한 말씀, 저주의 말씀, 책망, 고발의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에도 위협과 공갈이 나옵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너 이번에 대학 못가면 차라리 나랑 죽자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번에 대학 떨어지면 모자 동반자살하자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든 이번에 대학 가자는 뜻입니다. 너 그럴 거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이 집 나가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초보들은 이걸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성경의 메시지가 궁극적으로 내게 말씀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급반이나 고급반은 문자가 어떻든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내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문자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라는 음성에서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초보들은 그걸 알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도 초보적으로 보면, 짐짓죄를 범하면 구원이 취소된다고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짐짓죄를 범하면 속죄함이 없이 버림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짐짓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짐짓죄를 범하지 말라는 위협이요 협박입니다. 짐짓죄를 지으면 주었던 구원을 다시 빼앗겠다는 게 아닙니다.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리 못나게 살아도 천하의 개망나니 자식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짐짓죄를 지은 사람은 차마 얼굴을 들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이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 가운데 구원받고 천국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짐짓죄 지으면 예약되었던 천국행이 불발로 끝난다면, 고범죄를 밥 먹듯 범하는 우리는 아무도 천국에 못 갑니다. 우리 가운데 잘 믿다가 타락해서 온갖 짓을 다하며 살다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짐짓죄 범하고 버림받은 사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았다가 짐짓죄를 범해 받은 구원을 취소당한 사람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단순 소박한 초보 수준의 성경 이해입니다. 


구약의 사울왕과 신약의 가룟유다가 있습니다. 초보들은 이 두 사람은 택함 받고 구원받아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고, 사도가 된 사람이지만, 짐짓죄를 범해 받은 구원을 취소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고 지옥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곡이 타락해서 가라지가 된 케이스가 아니라, 처음부터 가라지였는데 알곡 사이에 끼어 있다가 결국 자기 본색을 드러내고 제 갈 길을 간 경우입니다. 이게 중급반 해석입니다. 초보를 버려야 합니다. 


원래 가짜가 더 돋보입니다. 가라지가 벼보다 더 잘 자랍니다. 보리밭에 깜부기가 더 잘 자랍니다. 뿌린 적이 없는 잡초가 밭을 점령합니다. 풀씨를 뿌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알곡을 압도합니다.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내리지만, 그물을 올려보면 고기는 적고 불가사리와 독 해파리만 가득 차 있습니다. 알곡이 타락해 가라지가 되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짐짓죄를 범해 해파리가 된 게 아닙니다. 물고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물고기요, 해파리도 마찬가집니다. 


지난 5월 초에 판교 충성교회에서 중국의 가정교회 사역자 150여 명이 초대되어 세미나를 했습니다. 가정교회 사역자들은 평신도들입니다. 제가 거기에 가서 구원론을 강의했습니다. 제가 우리말로 강의하면 조선족 사람이 통역을 했습니다. 5시간 강의하며 두 번 쉬었는데, 쉬는 시간에 제 강의를 통역한 사역자가 제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자기 교회 어느 부인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이 부인이 자기 두 자녀를 가정교회 사역자로 바치기로 서원했다고 합니다. 그 서원기도 후에 자녀들도 사역을 잘 하고 있던 가운데 그 엄마가 결국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기 전 며칠 간 그렇게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다가 죽었다는 겁니다. 그 자녀들도 사역에서 손을 떼고 낙심천만해 있고, 그 모친이 나가던 교회도 쑥대밭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다 좌절하고 시험에 빠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그 부인이 지옥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냐고?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그 부인의 두 자녀를 어떻게 위로할지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인은 천국 갔으니 염려마시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에 세 교회가 얽혀있다고 합니다. 엄마가 섬기던 교회, 두 자녀가 섬기던 교회가 시험에 든 겁니다. 저는 우리가 죽기 전 막판에 며칠이 아니라 몇 달을 하나님 욕하고 죽어도 우리 구원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 뵈러 가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셨던 구원을 빼앗아 가지 않으십니다. 구원은 영원한 것이니 안심하고 두 자녀를 권면하고 교인들에게 설교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짐짓죄, 고범죄가 아니라 더한 죄를 지어도 그것 때문에 우리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 부인이 분명 주님이 택한 백성이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절대 욕했다고 지옥가지 않습니다. 원래 가라지라면 지옥에 갔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데 욕했다고, 저주했다고, 제 정신이 아니어서 헛소리했다고 지옥갈 일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왔다갔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지옥가겠다고 하나님을 아무리 저주해도 지옥 갈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부끄러움 없이 주님의 면전에 서기 위해서는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완벽하고 완전한 것입니다. 어떤 변수나 복병도 그것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로마서 8장으로 가겠습니다.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절 이하입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다음에 여러분이 아는 죄를 다 적어 넣으십시오. ‘짐짓죄나 고범죄나 살인죄나 그 어떤 죄나’를 적어 넣으십시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짐짓죄는 사하심이 없다는 것은 초보 수준입니다. 짐짓죄 조차도 용서하시고 결국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며, 초급반이 아니라 고급반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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