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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40713n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 1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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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713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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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요 11:38-44</p>
<!-- paragraph:p0003 -->
<p class="p1">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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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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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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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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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40절 말씀을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십니다. 본문의 내용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냄새나는 주님의 친구 나사로를 다시 불러내신 사건입니다.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혼절했다가 깨어난 게 아니라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팔레스틴은 기온이 높아 사람이 죽으면 곧장 매장합니다. 나사로도 이미 장사를 치렀습니다. 부패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를 불러내신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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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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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이런 기적 같은 사건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이 놀라운 기적을 우리도 믿으면 체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구보다 깊이 신뢰하고 믿었던 마르다와 마리아도 주님이 나사로를 살린다는 것을 회의했습니다. 주님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하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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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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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과연 주님은 이 기적을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p>
<!-- paragraph:p0012 -->
<p class="p1">주님은 먼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41절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나사로의 두 자매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무덤을 내려다 봤습니다. 죽은 자기 오라버니의 시신을 내려다 봤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덤 앞에서도 무덤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도 세상 바라보면 한숨 밖에 안 나옵니다. 어디를 봐도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덤 앞에서도, 죽어 냄새나는 시신 앞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면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주님이 보입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세상이 썩은 내가 진동해도 무덤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보면 주님처럼 소망이 보입니다. 주님은 희망을 바라보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무덤 같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하늘을 보면 희망과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래 사람이라는 뜻의 안드로포스는 위를 바라보는 자 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도 보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해 걸을 때는 바다 위를 곧잘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파도가 위협하자 겁이 나서 아래를 보는 순간 바다에 빠집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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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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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은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41절 하반절과 42절 상반절입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아직 나사로가 살아나온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선제적으로 감사합니다. 내가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살려주실 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제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처럼 &lt;나사로를 살려달라&gt;고 하면 확실히 살려주실 줄 믿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확신에 찹니까? 이런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이런 기도의 자세와 내용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처럼 선제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이런 기도가 결국 기적을 부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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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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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지막으로 주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불러내셨습니다. 무덤 같은, 죽음 같은 현실을 향해 명령하십니다. 우리와는 다릅니다. 우리 경우는 세상이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위축됩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명령해야 하는데, 이게 반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에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압도해야 하는데, 마귀를 향해 물러가라고 명령해야 되는데 그렇게 못합니다. 주님은 죽음을 향해 명령하십니다. 두 마디도 아니고 딱 한 말씀 외치셨는데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썩어문드러진 나사로가 걸어 나온 겁니다. 나사로가 살아나오니 다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세상을 향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 조차도 인식을 못합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긴 것처럼 너희도 세상 권세를 제압하라고 하십니다. 병마를 물리치고, 약함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사탄이 위협할 때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외치십시오. 나는 약하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십시오. 그래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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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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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19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7lAVsZp9kCk"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