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3m 새와 백합화(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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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3m
마 6:25-34
새와 백합화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염려하지 말라. 세상에서 이보다 더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이 또 있을까요? 그러나 다른 한 편 이 말씀처럼 무책임한 말씀도 없습니다. 사람이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지 않고 어떻게 자기 인생을 책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게 장래를 위한 설계 등이 불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염려하지 않으려면 이 세상의 모순이나 부조리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우리가 염려의 불가피성을 강변한다 해도 염려란 여전히 무익하고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염려의 비생산성을 지적합니다. 27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한다고 키 큽니까? 로마 사람들은 키가 컸고, 로마 사람에 비해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염려한다고 키가 크겠냐고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염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염려는 백해무익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염려를 비신앙적이라고 규정하십니다. 30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린아이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엄마아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어린아이가 전적으로 부모를 신뢰하듯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엄아 아빠 두고 먹을 것 걱정하는 아이가 정상아이입니까?
염려란 믿음의 문제요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염려하는 겁니다. 그래서 30절 하반절에서 “믿음이 작은자들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비생산적이고도 비신앙적인 염려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왜 26절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고 28절에서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을까요? 그들의 생존의 원리를 보라는 겁니다. 공중의 새가 그저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돌보시는 손길이 있습니다. 백합화가 곳간에 곡식을 모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름답게 핍니다. 미물의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저렇게 완벽하게 먹이고 입히시며,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포기 하나도 돌보시는데, 오늘 우리를 살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사실을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 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맹목적으로 보지 말고 사색하며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방치해 두실 일이 없다는 겁니다. ‘공중의 새’는 큰 새가 아닙니다. 번역상 참새라고 했지 그저 작은 새입니다. 그런 미물도 하나님이 돌보시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에게는 하나님이 그저 조물주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남이 창조주이기 전에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자연물보다 얼마나 우리를 더 잘 돌보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뭘 그렇게 염려하고 걱정하십니까? 우리는 사생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머리털까지도 숫자로 헤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과장도 아니요, 문학적 표현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아직도 내 인생을 내 힘, 능력으로 살려고 합니다. 의탁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짐을 십자가 아래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합니까? 그것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내 운명의 절대적 주권자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붙잡고 염려해보아도 사태만 더 악화됩니다. 놀랍게도 항상 내 인생을 그르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주님께 맡기면 최상으로 요리하십니다.
다음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라고 하십니다.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의식주 문제가 우선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한 삶의 수순은 다릅니다. 이것 때문에 염려에 덜미 잡혀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가 의식주 때문입니다. 의식주를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의 행태입니다. 불신자들의 삶의 전형이 의식주에 매몰된 삶입니다. 우리는 의식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게 먼저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이방인들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아직도 이방인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의식주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한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고 합니다.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가 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입니다. 우리는 평생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며 살다가 죽을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고상한 말로 포장한다 해도 잘 먹고 잘 살자 라는 게 세상 사람의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의식주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것을 결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 삶이 얼마나 엉터리입니까? 이렇게 사는 한 절대 고뇌와 염려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자족하며 살아야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3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새나 들의 꽃을 보십시오. 항상 일용할 양식으로 삽니다. 그들에게는 곳간도 통장도 냉장고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굶지 않고 헐벗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살았습니다. 만나가 그랬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상해버렸습니다. 요즘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염려하십니까? 우리 탐욕 때문에 자족하지 못해 염려하며 삽니다. 우리는 탐욕의 화신들입니다. 욕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박한 일용할 양식에 자족하면 염려할 일이 있는데 만족하지 못합니다. 누구도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탐욕 때문에 염려합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도 청빈이 최고의 미덕으로 꼽혔습니다. 주님도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고, 바울도 어거스틴도 프랜시스도 무소유의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이요 행복이었습니다. 이제 더는 아닙니다. 가난이 가장 큰 불행이요 저주입니다. 자제하셔야 합니다.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에 자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은 어떻습니까? 얼마나 거칠고 강퍅합니까? 다 탐욕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느 부자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취할 것인데 네가 쌓아 놓은 저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마음을 비워야 여러분이 삽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족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의를 추구하며 사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염려에 발목을 잡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새와 꽃을 보며 주님 말씀을 사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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