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의 시대에 찾아 온 뭉크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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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인물 뒤로 핏빛 노을이 강렬한 뭉크의 <절규>.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작가입니다. 노르웨이의 1000크로네 지폐에도 등장하는 국민화가입니다. 뭉크의 대표작이자 근대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절규>(1893년)는 수많은 매체와 다른 작가들에 의해 오마주되거나 패러디 되면서 지금도 계속 재생산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1억 1990만 달러(약 1,212억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사선들, 이글이글 타는 듯한 저녁놀과 불길한 하늘,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한 검고 깊은 협곡, 그리고 그 중간에 서 있는 해골 같은 형상의 사람, <절규>라는 감정을 이토록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작품은 이 세상 어디에도 다시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규>의 석판화 버전이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이 달 3일에 개막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영혼의 시 - 뭉크>展.
지난 주 목요일 오후 잠시 다녀왔는데 몹시 만족스럽고 행복했습니다. 우선 국내에서 최초로 열린 뭉크전임에도 작품이 참 많고 다양했습니다. 뭉크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총 99점의 작품들이 전시됐는데 <절규> 석판화를 비롯 그의 대표작인 <마돈나>, <생의 춤>, 고흐를 연상하게 하는 <별이 빛나는 밤>, 여러 편의 자화상, 판화, 드로잉 등 소외와 사랑의 고통, 죽음의 불안과 슬픔을 모티브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한 뭉크 예술의 민낯을 한 자리에서 거의 다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극적이고도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호소력 짙은 메시지를 전달한 <절규> 모티브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불안과 소외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아이콘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절규> 석판화 버전을 보며 흥미로웠던 것은 작가가 작품 아래 적어 놓은 제목과 작은 글씨의 해설이 다 독어였다는 것입니다. <Geschrei>(절규), <Ich fuehlte das grosse Geschrei durch die Natur>(나는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한 절규를 느꼈다). 뭉크는 여섯 살 때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잃고 열네 살 때 역시 같은 병으로 사랑하는 누이를 잃습니다. 그리고 누이 동생의 정신병과 아버지의 광기에 시달려야 했고, 5형제 가운데서 유일하게 결혼을 했던 동생 안드레아스 마저도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뭉크 역시 이미 유년시절부터 자주 정신발작을 일으키며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세월호와 장성 요양원 방화사건,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등으로 온 국민들의 정서가 깊은 절망감에 빠져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이 절규의 시대에 절규의 화가 뭉크가 찾아왔습니다. 뭉크 그림의 특징은 뭔가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어디론가 떠밀려 가는 듯한 군상들의 무표정입니다. 잇단 대형 참사로 넋이 나간 지금 우리 사회의 표정을 빼 닮았습니다. 뭉크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아픔을 치열하게 드러내지만 결국은 그것을 이기게 하는 치유와 역설의 힘을 가졌습니다. 그를 따라 고통의 긴 터널을 걷다 보면 어느새 희망의 빛도 멀지 않았음을 스스로 느끼게 해줍니다.
올 여름에는 납량특집으로 <영혼의 시 - 뭉크>展,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