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이방 포도나무(렘 2:20-25)

이방 포도나무

렘 2:20-25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언제나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21절)라고 부르셨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사 5:2). 그런데 문제는 그 <귀한 포도나무>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당연히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21절)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애써 포도원을 만들고 지금까지 온갖 정성을 다해 포도나무를 가꾸어 온 주인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까요? 허무감과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푸른나무 아래서 행음하도다

<…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20절).

성경은 우상숭배를 영적인 행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다른 거짓된 신과 놀아난다는 점에서 그 말씀은 옳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요하게 계속해 왔습니다. 이유는 그 두 신이 세속적인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 즉 풍요와 생산을 담당하는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알이 축복해야 농사가 잘 되고 아세라가 축복해야 자손들이 번성하고 짐승들이 불어난다고 믿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신당이 따로 없었습니다. 높은 산이나 푸른나무 아래서, 마치 우리 민족의 무속처럼 그렇게 제를 올리며 예배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이 지금 크게 상심하시며 <내가 순전한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악한 포도나무가 됐다>며 한탄하고 계신 겁니다. 


성욕이 일어 헐떡거림 같도다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그 발정기에 만나리라>(24절).

<발이 빠른 암낙타>(23절)는 유난히 성적 본능이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들암나귀> 또한 그렇습니다. 이들 짐승들은 발정기가 되면 누구도 그 기세를 막거나 통제하지 못할 만큼 거칠게 헐떡거리며 날뛴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다가 바로 그 발정 난 낙타와 들암나귀처럼 어지러이 날뛰며 바알과 아세라를 찾아 그들에게 제사하며 영적인 행음에 깊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높은 산 위는 주로 바알을 위한 제사 장소로, 작은 숲과 푸른나무 아래는 주로 아세라 혹은 아스다롯을 위한 음란한 제사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영적 간음에 빠져 우상숭배에 열을 올리는 유다에 대해 분노하시며 고발하시는 여호와의 언어와 표현이 리얼하고 격렬하기 그지 없습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든든히 붙잡읍시다. 우상과 행음하느라 헐떡이는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지 맙시다. 포도원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해 올해도 극상품의 좋은 포도열매를 맺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