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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늘아!(렘 2:12-19)

너 하늘아!

렘 2:12-19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2절).

이 말씀은 이사야 1:2 말씀과도 그 정서가 같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놀랍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두렵고도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더구나 그 말씀이 나의 죄를 고발하시고 장차 일어날 징계와 심판에 관한 말씀이라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존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이해했습니다. 예레미야도 지금 바로 그런 감정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생수의 근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13절).

이게 바로 당시 유다가 기소 당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두 개의 죄목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 사람은 물 없이 살지 못합니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입니다. 막 태어났을 때는 90%가 물입니다. 우리 몸에서 물이 1-2%만 빠져나가도 갈증을 느끼고 피로가 오고, 5%가 빠져나가면 정신을 잃고, 12%가 탈수되면 목숨을 잃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고 했는데 7:3의 비율로 실은 물을 더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깨끗하고 좋은 물을 마셔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갔다는 것인데, 그것도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듯이>(2:23), <들 암나귀들이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과 같이>(2:24) 갔다면서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라고 했습니다. 누구든 생수의 근원을 부정하고 떠나는 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터진 웅덩이

<… 스스로 웅덩이를 팔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13절).

이것은 당시 유다가 잘못된 정치적 결단과 선택을 한 데 대한 지적이십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다른 나라와의 군사적 동맹을 맺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유다의 궁극적인 왕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면 하나님이 유다를 지키사 그 어떤 나라도 감히 유다를 해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게 하나님의 다짐이고 약속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하나님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힘에 기대기로 하고 앗수르와도 군사적 동맹을 맺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애굽과도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 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15-17절). <어린 사자>란 앗수르를 가리키며, <놉과 다바네스>란 애굽을 뜻합니다. 앗수르는 군사동맹의 대가로 금만 챙기고 도리어 유다를 침공해 예루살렘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고, 애굽은 돕기는커녕 도리어 <유다의 정수리를 상하게> 했을 뿐입니다. 독일어 성경은 이 말씀을 <유다의 두개골을 박살냈다>고 번역했습니다. 따라서 물을 모으려고 웅덩이를 팠건만 결국은 터진 웅덩이를 판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를 버림이 악이요,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것이 고통>(19절)이라는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