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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8n 성령 충만을 받으라!(엡 5:18-21)

20140608n

엡 5:18-21

성령 충만을 받으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18절을 다시 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하라는 무슨 뜻입니까? 충만은 양적인 표현입니다만, 성령이 양적인 분입니까? 성령이 물처럼 그렇게 통에 붓고 부으면 통에 충만한 그런 물량적인 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차다가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하면 완전히 채워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 충만하라고 합니까? 인격적인 분을 비인격적으로 묘사했을까요?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사마리아의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성령의 권능을 돈으로 사겠다고 흥정을 걸어옵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권능으로 이적을 베푸니까 자기가 마술사이니 자기 재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돈과 함께 망하라고 저주합니다. 성령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 안에서도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거나 모독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내게 임한 정도가 아니라 내게 임하신 성령 한 분 하나님께 내가 얼마나 복종하고 순종하느냐, 즉 나의 순종지수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부분에서 혼란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삽니다. 성령이 깨달음을 주실 때마다 결단하며 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데 성령에 대해 무심하거나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일까요? 어떤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여러분 각자가 이 말씀을 잣대로 스스로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 잣대를 들이대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십시오.


우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역사 없이는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제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확신하며 삽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하며 삽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늘 구원의 확신이 흔들입니다. 어떤 때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가도 어떤 때는 흔들립니다. 어떤 때는 성령 세례를 받은 것 같은데 어떤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계시의 이끌림을 받으며 사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마귀의 조종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삶은 행복합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다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은 주님의 증인으로 삽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주님의 증인이 된다 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증거하며 살지 못한다면 아직도 여러분은 성령 충만한 삶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언행, 몸가짐에서 주님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전혀 주님을 증거하지 않고 시침 떼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부끄러워 하며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 성령 충만한 삶이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주님을 증거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내 표정을 보고 내 말을 듣고 예수님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저 예수 믿어요.’ 라고 하니 뜻밖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어디서나 내 증인이 된다고 하십니다. 부디 온몸으로 주님을 증거하며 사는 성령 충만한 성도 됩시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성령 받기 전에는 무서워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시자 스스로 문의 빗장을 뽑고 튀어나왔습니다. 목숨을 내대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살벌한데 말입니다. 


다음은 성령이 충만하면 경건생활에 힘씁니다. 본문 19절 이하입니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여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치고 소극적이거나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수동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긍정적이고 역동적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 치고 나태한 사람 없습니다. 겉도는 사람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27절입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활 모습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경건생활에 임했는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으로부터 칭송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스스로 교회로 몰려 왔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은 열심히 삽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으로부터도 칭송을 듣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에너지원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힘을 공급해 주셔서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매사에 의욕적이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이고 진취적입니다. 성령 충만해서 여러분의 삶이 더욱 역동적이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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