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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601m </p>
<!-- paragraph:p0002 -->
<p class="p1">창 1:26-28, 2:7-9</p>
<!-- paragraph:p0003 -->
<p class="p1">사람이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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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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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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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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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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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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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창세기 1장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되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무려 10여 차례 나옵니다. 예를 들어 1장 본문 앞 절인 24-25절을 보십시오.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1절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12절도 보십시오.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게 다 무얼 말합니까? 이 세계와 우주에 충만한 종의 다양성이라는 겁니다.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의 결과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다양한 종들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후렴처럼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하고 완벽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진화의 여지가 없는 겁니다. 오죽하면 당신이 만들어 놓고 당신이 감탄하십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먼저 닷새 동안 사람이 살 수 있는 완벽한 세계를 만드신 후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물론 진화론자들은 사람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무기물에서 단세포, 무척추동물, 척추동물,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유인원, 인간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진화론자들의 가설이고, 성경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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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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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경이 말씀하는 사람의 완성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른 생물과는 구별됩니다. 우선,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본문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령이란 말은 히브리말로 네페쉬입니다. 네페쉬는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흙덩이에 불과했는데,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사람 안에 불어 넣으신 생기는 히브리말로 루아흐입니다. 하나님의 루아흐를 사람 안에 불어 넣었더니 생령이 된 겁니다. 루아흐는 영어로는 soul, 독일말로는 Seele, 헬라말로는 psyche, 아니마입니다. 이것을 생령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든 육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루아흐를 받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적인 일만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육에 매몰되어 살아도 정신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것으로는 부러울 게 없는 사람도 영적 갈망이 충족되지 않아 자살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떡으로만 살 수는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떡도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우리가 전인적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나 다른 피조물에겐 영혼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당신의 루아흐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사람만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비극과 불행은 다들 육적으로만 산다는 겁니다. 물질 일변도라는 겁니다.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되어 산다는 겁니다. 속지 마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루아흐, 곧 생기를 받아 창조된 영적 존재입니다. 육적인 삶과 영적인 삶이 동시에 다 필요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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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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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경은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본문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절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이 일단 숙고를 하십니다. 사람을 어떻게 창조할까 사색하십니다. 고민하다가,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만들자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적 존재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는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은 형상이 없습니다. 형상은 시공간 안에서만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에도 계시지만 저기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월신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품성의 형상입니다. 속성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의 형상은 무엇입니까? 지성과 감성과 의지입니다. 인격입니다. 우리에게도 인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여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품성의 형상인 지성과 감정과 의지에 따라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우리는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기에 원초에 주신 우리의 인격이 상처를 입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상대적이나마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세상에는 인간 이외의 어떤 피조물도 인격적인 존재로 지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 이외에 어떤 생물에게 지성, 감성, 의지가 있습니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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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하나님은 사람을 관계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이란 칭호도 엘이나 엘로아흐가 아니고 복수입니다. 엘로힘입니다. 유일신이신 하나님이 왜 복수입니까? 왜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 입니까?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수적으로는 세 분입니다. 그런데 이 세 분이 본체상으로 한 분입니다. 이걸 교리적으로는 삼위일체입니다. 세 분이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하나로 사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다 독자적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단일신이 아니라 삼위일체입니다. 하나님도 관계적 존재입니다. 세 분이 한 사회, 한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합니다. 즉 우리도 삼위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일체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가장 인간다운 삶이라는 겁니다. 이게 안 되면 항상 갈등과 아픔과 불행이 따릅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 하나를 이루고 사시듯, 우리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가장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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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든 관계를 망가뜨리는 게 죄입니다. 죄가 우리의 모든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죄가 가장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범하며 모든 관계가 망가집니다. 그때부터 인간관계 뿐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도 타락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극심한 소외와 고독에 몸부림하는 이유가 죄 때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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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부디 하나님, 이웃, 자연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아름답게 삽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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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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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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