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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40525m 독신과 이혼에 관하여(고전 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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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525m</p>
<!-- paragraph:p0002 -->
<p class="p1">고전 7:7-17</p>
<!-- paragraph:p0003 -->
<p class="p1">독신과 이혼에 관하여</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지금 우리나라 전체 가구 가운데 독신자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작년 말 현재 400만 가구를 넘었습니다. 전체 가운데 24%에 해당합니다. 30년 전에는 우리나라가 5인 가구가 가장 많았습니다. 4인 가구가 2위, 3인 가구가 3위, 2인 가구가 4위, 1인 가구가 5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가구 중 1인 가구가 1위입니다. 1인 가구라 해서 그들이 다 독신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독신가구 400만 가운데 160만이 30대 독신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갈수록 젊은 독신주의자들의 가구가 늘어가고 있다는 얘깁니다. 일본은 지금 독신세대가 일본 전체 가구 수의 32% 정도 되는 것으로 압니다. 독신을 원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 쪽으로 진행되는 추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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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여러분, 독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젊은 사람들의 독신주의를 어떻게 보십니까? 바삐 사느라 혼기를 놓쳐서, 혹은 연애할 기회가 없어 잠정적으로 홀로 사는 것 말고, 나름의 신념으로 독신으로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도 분명 독신이셨습니다. 33세에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독신이셨습니다.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연애를 하거나 결혼했다고 보는 것은 위경이나 니코스카찬스키의 &lt;그리스도 최후의 유혹&gt; 등에 나오는 얘기일 뿐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이 안 나옵니다. 바울은 독신을 넘어서 독신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독신이나 금욕이 신앙적으로 더 옳다고 하는 걸 보면 독신주의에 가깝습니다. 바울의 입장은 혼인을 하고 가족을 둔 개신교 목사보다는 가톨릭 신부나 수녀, 불교의 스님 쪽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신부나 수녀, 스님은 독신이라기보다 독신주의입니다. 목사보다 신부님이 더 신성해 보입니다. 좀 덜 세속적으로 보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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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그러면 바울의 진의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 독신에 대해 어떻게 가르칠까요? 고린도전서 7장 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혼인문제에 대해 질의를 했는데, 거기에 바울이 답하기를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분히 금욕주의적 발언입니다. 7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독신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이어지는 8절도 보십시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이것은 훨씬 더 노골적입니다. 반면에 혼인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입니다. 7장 2절입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9절도 보십시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듣자 하니 이 말씀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결혼한 사람은 절제를 못하고 불 같이 타오르는 정욕을 어떻게 하지 못해 결혼했다는 겁니까? 그럼 바울은 정욕을 잘 제어할 수 있어서 독신으로 살았다는 겁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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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우리는 성경을 보다가 이런 말씀을 만나면 참으로 난감해집니다. 처음부터 결혼을 안 하는 게 낫다는 건지, 사제들처럼 금욕적으로 사는 게 낫다는 건지, 결혼한 개신교 목사는 정욕을 제어 못하는 속물이라는 뜻인지 헛갈립니다. 과연 무엇이 옳습니까? 어떻게 해야 고린도전서 7장을 바르게 이해하는 겁니까? 여러분이 만일 고린도전서 7장을 금욕주의나 독신주의, 고행주의로 해석한다면, 오해입니다. 바울의 진의를 왜곡한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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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5 -->
<p class="p1">7절을 다시 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무슨 뜻입니까? 자기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독신으로 사는 것을 바라지만, 독신이나 결혼이란 게 자기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는 바로 그런 뜻입니다. 17절도 보십시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이어지는 18절 이하도 보십시오.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할례도 좋고, 무할례도 상관 없다고 합니다. 결혼해도 좋고 독신도 괜찮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존중해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사는 게 중요합니다. 어떻게 살든 그 중심에 주님만 모시고 살면 족하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할례가 옳으냐, 독신이 더 좋으냐 등을 따지는 것은 다 부질 없고 어리석은 논쟁이라는 겁니다. 결혼한 사람이면 결혼의 은사를 받은 것이라는 겁니다. 독신으로 사는 성직자도 혼인한 성직자보다 더 세속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헛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독신주의였다거나 금욕주의자라고 바울에 대해 판단을 하면 옳지 않습니다. 그는 받은 은사대로, 소명대로 지낸 것뿐입니다. 성경에는 독신주의도 금욕주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결혼주의도 없습니다. 은사대로 사는 것만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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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문제는 은사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탐욕을 부려 자기 팔자 고치려는 사람이 있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달에 통계청에 작년, 2013년의 혼인 및 이혼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결혼은 322,800건입니다. 이것은 전년 대비 4,300건이 줄었습니다. 전년대비 약 1.3% 감소했습니다. 이혼 건수는 116,400건으로 전년대비 0.7%가 증가했습니다. 결혼 대비 이혼율이 36%입니다. 100쌍이 결혼했다면 36쌍이 이혼한 겁니다. 결혼은 줄고 이혼은 증가 추세가 계속될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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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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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경은 이혼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결혼식 때 주례자가 마태복음 19장 6절,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셨기에 절대 나눌 수 없습니까? 맞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의 질서요 섭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원칙상 이혼 불허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절 하반절입니다.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성경은 이렇게 아내가 원하는 이혼도, 남편이 강요하는 이혼도 다 반대합니다. 말라기 2장 16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이게 이혼에 대한 하나님의 기본입장입니다. 지금도 하루에 300쌍씩 열심히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만, 성경은 반대하고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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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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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렇다고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이혼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이혼의 불가피성을 긍정합니다. 그 예외적인 경우는 이럴 때입니다. 첫째, 배우자가 내 양심의 자유를 훼손할 때입니다. 옛날 고린도교회는 사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 사도에게 질의한 것입니다. 어차피 고린도는 헬라문화권입니다. 그러니까 혼인을 할 때는 둘 다 기독교를 몰랐습니다. 그런 상태에 바울이 들어가 복음을 전하자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겁니다. 그런 짝 가정이 현실상 많았습니다. 둘이 같이 개종하면 좋은데 둘 중 하나가 개종하니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답합니다.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기독교 신앙을 배반하도록 위협하거나, 신앙을 이유로 이혼을 강요하면 이혼할 수 있다고 합니다. 15절입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이때는 이혼이 아니라 순교도 각오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울의 이 말씀이 안 믿는 배우자와 쉽게 이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까봐, 바울은 우선 기다리라고 합니다. 16절입니다.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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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다음은 배우자의 음행입니다. 주님도 마태복음 19장 6절 이하에서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면서도 음행한 연고라면 이혼사유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음행이 자동적으로 이혼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용서하고 기다려 주는 게 옳다고 합니다. 호세아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고 남의 아이를 낳아도 용서하고 같이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음행만큼은 성경이 인정하는 정당한 이혼사유가 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배우자라면 이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너무도 위태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대중문화가 전방위적으로 시험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자기 관리도 필요하고, 배우자에 대한 더 많은 이해도 필요합니다. 부부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지만, 때론 가장 큰 짐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하나 가장 큰 아픔이나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p>
<!-- paragraph:p0024 -->
<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본문 16-17절을 함께 읽으며 마칩니다.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p>
<!-- paragraph:p0026 -->
<p class="p1"><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br></p>
<!-- paragraph:p002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k-x3kvtUVII"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