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섶을 사르며 물을 끓임 같이(사 64:1-7)

섶을 사르며 물을 끓임 같이

사 64:1-7


앞장 후반부에서 시작된 애처러운 기도가 여기서도 계속됩니다. 앞에서도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펴주옵소서>(63:15)라며 탄원했는데, 여기서도 일찍이 다윗을 구원하실 때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신 것처럼(시 18:9) 지금도 그렇게 <하늘을 가르고 강림>(1절)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로 강림하사 섶을 태우고 산이 녹아내리며 물이 끓듯 진동케하며 심판하사 이방 나라들이 떨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 속에는 화산으로 말미암아 산들이 불타고 용암이 분출되어 강과 바다가 들끓는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경고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므로 진노하심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5절).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가 바르게 행하면 선대하시지만 범죄하면 진노하사 보응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본분을 다 해야 하고, 늘 의를 행하므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특히 즐겨 예배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기꺼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무엇을 하든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자발적으로 그분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눅 15:20) 참회하는 자는 반드시 용서하시고 맞아 주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버리면 하나님의 회초리를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분의 인자하심이 완전히 철회되는 것은 아니며 당초 주신 그분의 언약 역시 폐기되지 않는다는 사상과도 일치합니다(시 89:30~). 실제 이스라엘은 거의 멸망할 뻔 하다가도 그 파멸에서 다시 구원받은 사례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시 78:38). 주의 긍휼은 영원하시므로 비록 우리가 범죄하고 주께서 진노하셨다고 해도 결국은 버림받지 않고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마름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절). 

예레미야의 애가가 있듯이 이사야의 애가도 있습니다. 이 두 애가의 주제는 모두 갈대아인들에 의해 닥친 예루살렘의 멸망과 또 그 비극이 가져온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사야는 예언을 통해 그 일을 미리 내다보며 탄식한 반면 예레미야는 직접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현장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자 같다>는 것은 성막의 뜰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 어떤 역겨운 질병에 걸려 정수리로부터 발바닥까지 상한 것과 터진 것 밖에는 없는 자 같았다(1:6)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는 주님이 미워하시고 가증하게 여기시는 더러운 옷처럼 형편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나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함이니라>(시 14:3-4). 그래서 <다 잎사귀 같이 시들었습니다>. 이 말씀의 원어적 의미는 <가을 낙엽처럼 땅에 떨어졌다>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의 신앙고백이 시들면 우리의 영혼의 수액도 점점 더 말라 결국 우리의 삶 마저 소멸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다는 것이 선지자의 안타까움이요 탄식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그것은 곧 우리에 대한 그분의 선하심과 아름다운 약속을 붙잡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