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8m 아담과 하와(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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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m
창 2:18-25
아담과 하와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설교제목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담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입니다. 이것은 사전적인 의미이고, 아담의 진정한 뜻은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감탄한 남자입니다. 하와는 산 자의 어미라는 게 사전적인 뜻인데, 하늘 같이 남편을 섬기는 아내입니다. 천생연분입니다. 남자가 먼저입니까? 여자가 먼저입니까? 여자가 남자를 낳았습니까?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왔습니까? 상식으로는 당연히 여자가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남자가 먼저이고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8절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다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남녀가 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우선순위에 있어서는 남자가 먼저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때 하나님의 흙으로 빚은 사람은 아담입니다. 그렇다면 하와는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본문 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남자만 지어놓고 보니 홀아비로 살아가는 아담의 모습이 딱해 보였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날 빛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둘째 날은 궁창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각 날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엿새째 날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그게 아담입니다. 그런데 아담을 창조하고 나시고서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처량해 보였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만들어 짝이 되게 해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처음부터 돕는 배필이 필요했던 2% 부족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십니다. 본문 21절 이하입니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결혼식 때 신부 아버지가 신랑에게 건네주는 성서적 근거가 22절입니다. 시차를 두고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늦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본능적으로 기득권을 주장합니다. 여자들은 태생적으로 남자들의 이런 정서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 것보다는 나중 것이 더 세련됩니다. 여자들은 하필이면 왜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냐고 합니다. 하나님이 남자들은 흙으로 만드셨지만,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퇴직하면 시골 가서 농사짓겠다고 합니다. 귀소본능입니다. 남자들은 무기질입니다. 1차 산업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뼈로 만들었습니다. 2차 산업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도시를 좋아합니다. 처음부터 여자들은 남자보다 훨씬 진화된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생물학적으로나 유전학적으로도 여자들이 남자보다 염색체가 더 많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여성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남자들은 힘만 세지 어리석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훨씬 더 진취적이고 모험적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범했습니다. 여자가 더 영악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했다고 눈길도 안 줬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이것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는데도 훔쳐봅니다. 창세기 3장 6절 이하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어느 날 뱀이 꾀자 즉각 따먹고, 남자에게도 주어 공범을 만듭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했는데도 냉큼 따먹는 것 보십시오. 여자들은 겁이 없습니다. 남자들은 우직하고 보수적인데 반해, 여자들은 약삭빠릅니다. 남자와 여자 둘 가운데 누가 더 돈을 잘 벌 것 같습니까? 안 벌어서 그렇지 여자들이 훨씬 더 잘 법니다. 남자들은 기껏해야 한 달에 5-600만원이지만, 여자들은 한 건에 몇 천 만원입니다. 남자들은 간이 작아서 부동산 투기 못합니다. 별 볼일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고 하면, 그건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한 건 해서 이사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이 여자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옛날부터 남자들이 목숨 걸고 전쟁에서 가져온 전리품은 보석, 모피 같은 것들입니다. 그게 다 여성들 겁니다. 이게 인류의 전쟁사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남자들은 밤낮없이 냉장고, 청소기 같은 것 만들지만, 여자들은 낮에는 카페에서 얘기하다가 저녁에는 집에 들어가 연속극 봅니다. 그러면서도 여자들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느냐고 하면 요즘은 아니오가 아니라 절대 아니오라고 합니다. 그럴 일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조치를 취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먼저 여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 하반절입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에베소서 5장 22절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골로새서 3장 18절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베드로전서 3장 1절입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어디를 봐도 오직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주께 하듯 순종하라고 합니다. 왜 성경이 이렇게 여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할까요? 디모데전서 5장 12절 이하입니다.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하와가 남편과는 아무 상의 없이 혼자 뱀과 수작하다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자를 남자의 통제 아래 두셨습니다. 혼자 뒀다가는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남편의 권위 아래 묶어두신 겁니다. 처음부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타락한 후에 집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가정엔 더는 행복이 없습니다. 늘 불안과 상처와 아픔만 있을 뿐입니다. 그 사회엔 이혼만 늘어갈 뿐입니다. 현대사회의 비극은 여성이 가정의 위계질서를 깨뜨리고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진부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나 사실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배우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이룬답시고 남편들이 아내에게 설설 깁니다. 이게 잘못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은 아내들이여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한 것은 그래야 그 가정에 행복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한 가정을 위해 필수적인 원칙입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는 개혁을 시작하면서 비텐베르크 수도원에서 수녀 12명을 다 환속시켰습니다. 나이가 많은 3명은 집으로 돌아가고, 8명은 다 짝을 찾아 결혼했습니다. 이걸 다 루터가 주선했습니다. 그런데 뚱뚱하고 인물이 제일 못난 카타리나 한 사람은 짝도 못 만나고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돌아갈 집도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루터가 그녀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루터의 일기를 보면,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이 힘들었습니다. 싸우기까지 합니다. 수도사와 수녀로 살다가 어느 날 부부가 되어 한 이불을 덮었으니 얼마나 적응하기 어려웠겠습니까? 그들은 곧 적응을 했고, 만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해서 무려 6명이나 낳았습니다. 루터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카타리나는 창세기 1장 28절에 복종하고 있고, 내 뜻에 순종하고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는 겁니다. 루터도 자녀를 많이 낳기를 원했습니다. 카타리나는 자기 자식 6명 이외에 4명을 입양해 10명을 훌륭한 자식으로 키워냈습니다. 성경은 아내에게 새벽기도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전도회 회장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목사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그 가정에 행복이 임한다는 겁니다.
남편에게 주신 처방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5장 25절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에베소서 5장 28절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여자는 남편의 갈빗대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아내를 때리면 자기 옆구리를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그것은 곧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아내의 순종도 남편의 사랑도 갈수록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에 대한 바른 응답을 하지 않으면 절대 가정에 평화가 없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남자와 여자란 무엇이고 어떤 관계이며, 주님이 각자에게 내린 말씀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아내는 더 많은 복종을 결단하시고, 남편은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다짐하는 더욱 복된 부부, 가정, 남녀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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