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1m 잘 되고 장수하는 길(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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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1m
엡 6:1-3
잘 되고 장수하는 길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미국의 어느 한 작은 마을에 일찍 남편을 잃은 부인이 어린 외아들과 함께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는 반듯하게 잘 자랐고, 고등학교 졸업 때는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졸업식 때 아이가 대표로 연설했습니다. 대통령의 메달도 받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 영예로운 아들의 졸업식장에 입고 갈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부득이한 사정으로 졸업식장에 갈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들은 펄쩍 뛰며 어머니가 안 오시면 자기도 안 가겠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졸업식에 참석은 했으나 혹 누가 될까봐 멀리 숨어있었습니다. 아들은 대통령의 메달도 받고 멋지게 졸업 연설까지 마치고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직도 박수가 계속되고 있는데, 아들은 뛰어 내려가 기둥 뒤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어머니를 단상 위에 모시고 올라가, 이분이 오늘 저를 있게 한 저의 어머니입니다고 하며 자기 어머니를 소개합니다. 이 아이가 바로 미국 28대 대통령 윌슨입니다.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삼일운동이 촉발되었습니다. 윌슨이 1919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1914년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 5월 둘째주일을 어머니 날로 정했습니다. 아예 법으로 정해놓고 어머님의 은혜를 기리게 했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어버이날과 주일의 기원입니다.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 효라는 것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윤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준엄한 계명입니다. 계명 중에서도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직접 돌에 각인해 주신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돌판에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입니다. 두 번째 돌판에는 사람에 관한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6계명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제7계명이고, 간음하지 말라는 제8계명입니다. 사람에 관한 첫 계명은 부모공경입니다. 이 계명에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다른 계명은 일방적인 외마디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 다 외마디 말입니다. 그런데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는 전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약속된 유일한 계명입니다. 이게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란 뜻입니다. 만사형통 무병장수한다는 게 부모공경 계명에 약속된 하나님의 복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 말고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복이 놀랍게도 효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뜻밖이란 생각 안 드십니까?
반대로 효를 다하지 않으면 그런 복과 은혜를 누리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실제 보면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불효자는 불행했습니다. 효자는 다 복 받았습니다. 악명 높은 불효자는 엘리의 두 아들을 꼽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만고의 그런 부랑아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합니다. 전쟁에 이기려고 가져 간 하나님의 법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깁니다. 초조하게 전장의 소식을 기다리던 아버지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뒤로 나자빠져 뇌진탕으로 죽습니다. 거기서 대가 끊깁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도 패륜아였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반란군을 지휘했는데 그러나 결말은 노새를 타고 큰 상수리나무 아래를 지나다 자신의 자랑인 금발이 그 나무 가지에 걸려 몸은 공중부양하고 노새는 아래로 빠져나가 허공에 매달립니다. 그를 쫓던 진압군 대장 요압이 달려가서 그의 심장에 창을 박습니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도 그렇습니다. 노아가 잔뜩 취해 옷을 벗고 자는 걸 본 함은 아버지의 치부를 떠들고 다닙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칩니다. 자자손손 다른 형제의 노예가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효자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만사형통했고 장수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의 시기를 사서 노예로 팔려가고 애굽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합니다만, 결국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110세까지 장수합니다. 창세기 39장 이하를 보면 재밌는 표현 하나가 후렴구처럼 반복되는데 “그의 범사가 형통하더라”입니다. 노예로 애굽으로 팔려갔는데 하나님은 그의 범사가 형통했다고 합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혔는데도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형통했다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기적 같은 반전입니다. 누구도 풀지 못했던 애굽 왕의 난해한 꿈을 명쾌하게 해명하며 총리가 됩니다.
지혜의 왕이요 영화와 복의 화신으로 알려진 솔로몬도 효자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반역하다 비참하게 죽은 이복형제 압살롬과는 대조적입니다. 솔로몬의 필생의 숙원사업이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은 사실은 부친 다윗의 소원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복종해서 봉헌한 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솔로몬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밧세바에게 손을 들고 맹세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효를 다하겠습니다. 당신이 연로해도 절대 멸시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복 주십니다.
성경의 효 사상은 철저하다 못해 과격하기까지 합니다. 신명기 21장 18절 이하를 보면,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에서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하고, 잠언 30장 17절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성경의 효 사상은 극단적일까요? 하나님 공경과 부모 공경을 별개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효 사상은 그 어떤 전통보다 강경하고 엄격합니다. 유교에서 아무리 효를 강조한다 해도 그것은 윤리나 도덕입니다. 기독교의 효는 계명입니다. 주님은 죽음 앞에서도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면 제가 지겠습니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절세의 효자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죽으라고 하면 순종하지 못할 겁니다.
성경에 보면 말세의 징후를 소개하는 목록이 나옵니다. 그 징후 가운데 항상 빠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로마서 1장이나 디모데후서 3장에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종말로 갈수록 사람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불효의 현상이 사회적 현상으로 도드라진다는 겁니다. 불효도 중요한 말세적 현상의 하나입니다. 가면 갈수록 효가 실종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돌에 맞아 줄을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잘 되고 장수하고 싶다면 효를 다해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기독교의 효는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명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주께 하듯 부모님께 효를 다하십시오. 유교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잘 모십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잘 하지 못하던 자식들이 일단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악착같이 제사를 지냅니다. 성경은 돌아가신 후에 그럴 생각말고 살아계실 때 효를 다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부모님도 행복하고 효도하는 자식도 땅에서 하나님이 형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이 복이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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