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식(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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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
사 61:1-3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40:9).
아름다운 소식은 곧 복된 소식, 복음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보다 더 아름다운 소식은 없습니다. 복음보다 더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주님은 이 본문을 전적으로 자신에게 적용하셔서 주님이 선포하신 메시지가 곧 복음이요 아름다운 소식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눅 4:16-19). 그렇다면 어째서 복음이 그토록 <아름다운 소식>일까요?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1절).
복음은 천국의 소망을 전하므로 누구보다 <가난한 자들에게> 현실적인 힘이 되며 위로가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의 삶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저 하늘에서 누릴 삶은 영화로우므로 복음이야말로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도 복음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그들의 아픈 마음, 피 흘리는 가슴을 어루만지사 평온을 누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포로된 자>도 <갇힌 자>도 마찬가집니다. 마치 고레스가 포로로 잡혀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자유를 선포했던 것 같이 복음은 인생들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줍니다. 사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결에 의해 갇혀 있던 자들이고 죄 때문에 팔려 포로되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의 그 모든 채무를 변제하사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복음으로 말미암은 진정한 자유고 해방입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는 정죄함도, 심판도 없다는 것이 복음의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절).
유대인들은 큰 슬픔을 당할 때 흔히 재 위에 앉아 울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재 대신 머리에 화관을 씌워 준다고 합니다. 슬픔 대신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대목에 유음법이라는 수사법이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에페르>(재) 대신 <페에르>(화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글자 하나의 위치를 바꾸어 뜻을 달리 하듯이 복음이 한순간 그렇게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무거운 마음, 어두운 마음, 움츠러든 마음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바르고, <찬송의 옷>을 입게하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슬픈 표정을 짓지 마십시오.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날마다 기쁨의 화관을 쓰고 사는 사람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의 나무들, 즉 기쁨과 감사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