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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420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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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고전 15:51-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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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활의 비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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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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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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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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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활절을 맞으신 성도님들 가정에 부활의 새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특히 아직도 침몰선 안에 갇혀 구조되지 못한 실종자들, 어린 학생들 위에 부활하신 주님의 기적이 함께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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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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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부활입니다. 그러면 51절 상반절의 &lt;비밀&gt;은 어떤 비밀일까요? 당연히 부활의 비밀입니다. 지금도 내가 너희에게 부활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겁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주님 외에도 많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있고, 죽었다가 나흘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온 나사로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부활한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이나 23절에서는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주님이 부활의 효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나사로를 보고는 부활이라 하지 않고 소생이라고 합니다. 부활은 이것입니다. 51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은 세상 종말을 알리는 천사들의 나팔입니다. 즉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소리입니다. 그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부활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핵심입니다.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가 다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52절입니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지금은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육체가 다 썩어 흙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나팔과 함께 부활하면 그때는 절대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육체로 변화됩니다. 53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비한 몸,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부활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진수입니다. 바울이 가르치는 부활의 비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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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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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런데 52절을 다시 보십시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lt;우리&gt;는 누구입니까? 주님이 재림하실 때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 이 세상 종말이 올 수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종말이 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 재림 현재, 세상 종말 현재에 죽어있는 자들은 죽은 상태에서 살아나며 변화되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상태로 변화됩니다. 지금 우리의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없으니 살아있는 사람은 그 상태로, 죽어있던 사람은 그 상태에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 야이로의 딸은 부활이 아닙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서 얼마간 살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이런 경우를 부생, 회생, 소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주님 만이 유일하게 부활의 모델입니다. 주님은 영으로 승천하신 게 아닙니다. 부활체로 승천하셔서 지금도 영으로 계신 게 아니라 부활체로 계십니다. 그러면 왜 부활은 변화가 그 핵심일까요?</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부활 이후에는 우리가 더는 죽지도 썩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몸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몸은 소모품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몸, 영원히 살 수 있는 부활체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53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영생에는 부활이 절대 전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진수가 변화라는 겁니다. 그러면 부활체, 신령한 몸은 무엇입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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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서 꽃씨와 꽃을 얘기합니다. 부활체가 궁금하다면 그러면 꽃씨와 꽃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사실 꽃씨는 어떤 꽃이든 그 꽃씨는 볼품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씨앗은 없습니다. 코스모스 씨는 때가 낀 손톱을 깎아놓은 모양입니다. 나팔꽃은 꼭 쥐똥처럼 생겼습니다. 봉숭아 꽃씨는 들깨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심어 꽃을 피우면 하늘하늘한 코스모스가 됩니다. 나팔 꽃씨를 심어 피우면 얼마나 여리고 순수합니까? 봉숭아 꽃씨를 심으면 그렇게 소박하고 정겨운 색의 꽃이 핍니다. 꽃씨와 꽃을 그 겉모습으로는 연결해 생각할 수 없지만, 유전적으로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배추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계란에서 노란 병아리가 나옵니다.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42절 이하를 보십시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꽃씨처럼 볼품없는 우리의 육의 몸이 꽃을 피운 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게 부활체입니다. 그때는 더는 장애인이 없습니다. 그때는 다이어트도, 성형수술도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세계입니다. 전쟁터에 나가 팔다리를 잃은 사람, 화장해 장사지낸 사람, 매장한 사람, 골분을 바다나 산에 뿌린 사람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원자가 어딘가에 있다가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다시 모여 신령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의 병든 마음도, 혼미한 정신도, 전도된 가치관과 세계관도, 인간관계도, 가족관계도 다 변합니다.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관계가 재편됩니다. 물론 의식의 연속성은 있습니다. 부활한 이후에도 저 사람이 내 아내요 내 자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과 같은 혈연으로 가족관계가 연장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두가 한 형제와 자매가 됩니다. 어떤 분은 부활 후에도 지금의 남편과 살아야 한다는 부활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혹 부활해서 첫 사랑을 만나면 어떨까 기대하거나 두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활하고 나서는 누구도 염려할 필요도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 주님은 천사와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관계가 전혀 새로운 관계요 질서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일체 두려워하지 마시고 기꺼이 부활하십시오. 누구를 만나도 상관없습니다. 다 한 형제요 자매가 됩니다. 영원히 행복할 뿐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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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우리가 부활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왜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까요? 왜 이틀이나 나흘이 아니라 사흘일까요? 전 인류의 죗값을 다 치르기 위해서는 꼭 사흘이 필요했습니다. 사흘 간 무덤에 계시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셔야 비로소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갚을 수 있었기에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겁니다. 다시 말해 이틀을 계시기에는 우리의 죄가 너무 중했고, 나흘을 계시기에는 주님의 피 값이 너무도 값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내 구원의 확실한 물증이요 확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죄보다 주님의 피 값이 더 중합니다. 주님은 단 3일간의 죽음으로도 전 인류의 죗값을 다 지불할 수 있을 만큼 값진 분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해결할 수 없었다면 부활은 없었을 겁니다. </p>
<!-- paragraph:p0018 -->
<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주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확실한 보증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 다음의 열매로 속속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 포도나무를 심어 놓고는 첫 열매를 기다립니다. 첫 열매 후에는 그 다음부터 줄줄이 열매가 맺힙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우리 앞에 부활의 길을 여셨습니다. </p>
<!-- paragraph:p0020 -->
<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주님의 부활 앞에서 두 가지를 확신합시다. 주님의 부활을 보니 내 죄가 완벽히 해결되었구나, 나도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부활하겠구나 확신하십시오. 부활주일을 맞아 다시 한번 자신의 속량과 부활을 깊이 생각하십시다. </p>
<!-- paragraph:p0022 -->
<p class="p1"><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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