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6m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막 1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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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6m
막 15:16-23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형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미 탈진상태였습니다. 사형수들은 다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비아 돌로로사라는 길을 가야합니다. 비아 돌로로사란 빌라도의 법정인 안토니오 광장에서 형 집행장소인 골고다까지 1.5km, 너비는 2m 되는 좁은 길입니다. 주님은 어제 저녁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다 전격 체포되어, 대제사장 가야바 집에 끌려가서 힐문 당하다가,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빌라도는 골치아픈 재판이기에 헤롯에게 떠넘겼다가 다시 빌라도에게 넘어옵니다. 밤새 그렇게 끌려다닙니다. 주님은 온갖 고난과 모욕을 당하다가 십자가형을 받습니다. 16절 이하를 다시 보십시오. 이게 빌라도로부터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직후 장면입니다.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이랬기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 행진 전에 이미 초축음이 되신 겁니다.
그래서 골고다까지 가는 비아 돌로로사를 행진하며 많이 쓰러지셨습니다. 지금은 비아 돌로로사가 14개 지점으로 구획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후대 사람들이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기 위해 그렇게 지정한 겁니다. 그런데 5번째에서 주님이 다시 쓰러지십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쓰러지면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두르는데 아무리 채찍을 맞아도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백부장이 그 십자가 행렬을 구경하던 건장한 흑인을 불러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그가 바로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란 사람입니다. 구레네는 지금의 북아프리카 리비아입니다. 최근에 40년간 독재하다 민중봉기로 가다피가 축출 당했는데, 그가 리비아의 최고지도자였습니다. 리비아 사람이 왜 이때 예루살렘에 있었을까요? 우선 이름이 시몬입니다. 시몬은 전형적인 유대인입니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나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도였던 것 같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순례객으로 예루살렘에 왔다가 주님의 십자가 행진을 구경하게 된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시몬으로서는 기분이 고약했을 겁니다. 졸지에 사형수가 메고 가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강제 부역을 당한 겁니다. 기분이 더러웠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시 구레네 시몬이 지고 갔던 주님의 십자가는 본문 21절의 표현처럼 <억지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십자가는 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다 억지로 지고 가는 겁니다. 또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반드시 은혜를 입습니다. 조선시대 인조의 둘째아들 효종의 일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가 민정시찰을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팔순 노모를 업고 길가에 서있었습니다. 효종이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왜 노모를 업고 있는가?” “저의 모친의 평생 소원이 임금님 용안을 뵙는건데 오늘 30리 길을 걸어와서 임금님 용안을 뵈니 소인의 마음의 큰 짐을 덜었습니다.” 효종은 효자입니다. 이 효자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큰 상을 내렸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또 다른 한 사람도 그렇게 노모를 업고 왕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다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그 사람도 모범답안으로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 동네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그 아들을 성토했습니다. ‘저 놈은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인데, 지금 쇼를 하고 있습니다.’ 왕이 당장 저 놈을 잡아 곤장을 치고 하옥시키라고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효종은 효는 흉내 내는 것도 아름답다며 똑같은 상을 내리라고 합니다. 십자가도 그렇습니다. 흉내라도 귀한 것입니다. 억지 십자가도 값진 것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최대 위기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교회 선택 기준은 딱 한 가지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를 찾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합니다. 주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부정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더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겠다고 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구레네 시몬도 그렇습니다. 졸지에 당했던 억지 십자가로 일생일대의 변화와 복을 경험합니다. 본문은 구레네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에게는 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거꾸로 아들의 이름을 먼저 밝히고 아버지의 이름을 적습니다. 박성종 씨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는 아시지요? 그런 뜻입니다. 안기원 씨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그러나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라고 하면 아시겠지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란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마가복음이 실제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사건이 있은 후 30년 쯤 지나서 주후 65년 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마가복음이 기록될 때는 이미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시몬의 두 아들이 월드 스타가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안현수가 되어 있었고 박지성이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시몬이라고 하면 몰라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하면 다 알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은 두 아들을 언급한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알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로마서 16장 1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로마서는 바울이 썼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하며 부탁하기를 루포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라고 하며 문안을 부탁합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시몬의 부인입니다. 바울이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할만큼 구레네 시몬의 아내는 훌륭한 신자가 되어 로마교회를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을 보면, 안디옥 교회 제직명단이 나옵니다.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 여기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는 아프리카 니그로라는 뜻이고, 시므온은 히브리식 이름 시몬을 헬라식으로 표기한 시몬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이름 없는 아프리카 출신 이방인 순례객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경험한 뒤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생을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겁니다. 이후 안디옥 교회에서 로마교회에서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까지도 위대한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그 아버지 시몬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교계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마가복음의 저자가 복음서를 쓰면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소개할 만큼 유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결이 다 무엇이라구요? 시몬이 억지로나마 주님의 십자가를 거들었던 결과입니다.
여러분, 누구든 주님의 십자가를 한 귀퉁이라도 잡고 가면 복됩니다. 주님이 은혜로 갚으십니다. 그게 비록 억지 십자가라 해도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롭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다 자기만의 고유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남편이, 어떤 이에게는 아내가, 어떤 이에게는 자식이 십자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 권사가, 집사가, 놀랍게도 어떤 이에게는 목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회피하지 마십시오. 지고 가십시오. 그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운명입니다. 십자가를 피해 달아나면 그는 더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입니다. 앞서 가시는 주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좇아야 그리스도인입니다. 찬송만 십자가를 부르지 마시고, 반드시 억지 십자가라도 지십시오. 그래서 구레네 시몬처럼 온 가족이, 그 자손들이 두고두고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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