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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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센 지방의 백작이자 법률고문관이었던 진젠도르프(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 1700-1760)는 젊은 시절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의 그림 <이 사람을 보라>에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것은 가시관을 쓰고 피 흘리시는 주님의 얼굴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그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가시관을 썼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진젠도르프는 그만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당신을 위해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당신이 이끄시는 대로 무엇이든 다 행하겠나이다.> 그 후 그는 모든 관직과 명예를 내려놓고 오직 열정과 청빈과 헌신으로 독일 경건주의와 모라비안 선교역사에 가장 아름답고도 순수한 족적을 남깁니다.
<Ecce Homo!> 원래 이 말은 로마 총독 빌라도가 주님을 재판하며 한 말인데(요 19:5), 니체는 이 말을 차용해 자기 자서전의 표제로 삼기도 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관리였습니다. 주후 26년에 제5대 총독으로 유다에 부임하여 10년간 재임했는데 그의 임기 중에 바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와서 고소하자 빌라도는 일단 주님의 행위를 법에 비춰봅니다. 그러나 이렇다 한 혐의점을 찾을 수 없자 곧 그 고소를 기각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더욱 공세를 취합니다. 자칫 폭동이라도 일어날 기세를 보이자 빌라도가 즉각 후퇴하여 주님을 다시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실패합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 18:38). 분위기는 더욱 험악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유대 군중들의 외침이 빌라도의 법정을 뒤흔들었습니다. 빌라도는 여기서 또 한 번의 정치적 협상을 꾀합니다. 즉 주님을 일단 죄인으로 규정하고 유월절 특사로 방면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군중들은 그 마저도 거부하며 차라리 강도로 복역 중인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빌라도가 최후의 융화책을 시도합니다. 주님께 왕의 옷을 입히고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운 후 군중들 앞에 끌고 나와 온갖 희롱과 모욕을 다 당하게 함으로써 사태를 적당히 무마해 보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결국 유대인들이 친 마지막 그물에 걸립니다. <이 사람을 석방하면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를 놓으면 그것은 황제를 반역하는 것이다!>(요 19:12). 이제 빌라도는 꼼짝없이 자기가 황제의 충신임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니라>(요 19:16).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 거짓된 유대 군중들의 충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황제의 충신으로 남기 위해 로마 제국의 법, 황제의 법을 유린하고 모독했으며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유대 군중들의 악의를 대행한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유대 군중들도 마찬가집니다. 로마 황제의 추종자들도 아니면서 <황제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요 19:15)며 악을 썼습니다. 이 추태, 이 비굴, 그들은 자기 수호에 미쳤습니다.
이렇듯 주님은 빌라도의 심판을 받으시면서 도리어 정치권력의 허구를 만천하에 폭로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심판하며 실은 자신을 심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 역시 주님을 고소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종교적 기득권에 미친 거짓과 증오의 살인자들임을 고발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심판받는 자를 통해 심판자를 심판하시는 심판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