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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330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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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 21:1-9, 막 14:1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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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나귀 주인 다락방 주인</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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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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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 21:1-9, 개정)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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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막 14:12-16, 개정)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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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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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본문에 보면, 마태복음에는 예루살렘 입성 때 탄 나귀 주인이 등장하고, 마가복음에는 최후의 만찬장을 제공한 다락방 주인이 나옵니다. 주님의 마지막 길은 배신, 음모, 비겁함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두 사람은 주님이 가시는 그 마지막 길에 값지고 아름다운 희생을 바친 헌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아름다운 봉사, 최후의 헌상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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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선 이들은 둘 다 무명의 헌신자들이었습니다. 왜 이름이 없었겠습니까만 성경은 이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봉사와 희생이 무명의 희생과 봉사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만, 그들의 헌신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나귀를 바친 헌신은 스가랴 9장에서 예언했던 구속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마태복음 본문 4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그러면서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탔다고 합니다(5절). 그러나 정작 나귀 주인은 숨습니다. 다락방 주인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의 최후 식사 한 끼가 최후만찬인데, 바로 그것을 도운 사람입니다. 주님은 만찬석상에서 오늘날까지도 지키고 있는 성만찬을 제정하십니다. 최후의 만찬도 얼마나 소중한 사건이었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다락방 주인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봉사를 했으나 역시 그도 무명입니다. 오늘 두 본문을 보면 오직 나귀를 타신 주님만 보이고,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만찬을 드시는 주님만 보입니다. 이게 진짜 헌신입니다. 주님만 보이고 헌신자들은 주님 뒤로 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옳은 헌신자의 태도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만 드러내고 나는 숨어야 합니다. 그게 아무리 대단한 일이고 명분이 있고 수백 년 전에 이미 선지자가 예언한 사건이라 해도 나는 끝까지 십자가 뒤에 숨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요즘은 저마다 자기 이름을 내고 선전하기 바빠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다시 한 번 주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름다운 헌신을 바친 나귀 주인과 다락방 주인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무명의 봉사자들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런 헌신자를 찾으십니다. 그를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십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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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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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들은 흠 없고 티 없는 것, 사전에 준비되고 예비된 것을 주님께 헌상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절을 보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고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주님께 바치는 것은 남이 타던 것, 때 묻은 것, 티가 있고 상처가 있는 것은 안 됩니다. 언제나 아무도 타보지 않은 순수한 것이 중요합니다. 한 주의 첫 날, 첫 수확을 드려야 합니다. 무흠이 헌신과 헌상의 중요 전제요 원칙입니다. 옛날에는 제사장들이 가져오는 제물을 검사했습니다. 다락방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처음 꾸민 방은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이 방은 준비된 방이지 쓰던 방을 불쑥 제공한 방은 아닙니다. 그 방은 사전에 주님을 위해 준비된 방이요 예배된 방이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마가복음 14장 15절을 보십시오.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급조된 방이 아니었습니다. 사전에 예비된 방이었습니다. 주님께는 준비된 객실을 내드려야 합니다.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바쳐야 합니다. 아무 준비도 예비도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떼우면 안 됩니다. 찬양도 마찬가집니다. 충분히 준비된 찬양을 바쳐야 합니다. 주님께 바치는 헌상은 흠과 티가 없어야 한다는 것, 사전에 충분히 예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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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들은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자 즉시 드렸다고 합니다. 즉시 드렸다는 것은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21장 3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가복음 14장 15절도 보십시오.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우리는 아직도 주님께 인색합니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아직도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그럼에도 나귀 주인을 보십시오. 그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내드렸습니다. 주님이 이번에도 평소 하시던 대로 걸어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면 좋은데, 굳이 나귀를 타십니다. 그런데 나귀 주인은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 한 마디에 나귀 한 마리를 내줍니다. 왜 우리가 여기 두 사람처럼 기꺼이 고민하지 않고 내드려야 옳을까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나귀 새끼나 다락방 정도가 아니라 당신의 피까지도 우리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그분 앞에 우리가 무엇을 아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나귀 새끼를 아까워하고, 기꺼이 다락방을 내드리지 못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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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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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가대원 여러분도 반드시 이 점을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나귀 주인과 다락방 주인 같은 헌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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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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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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