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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벙어리 개들(사 5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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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벙어리 개들</p>
<!-- paragraph:p0002 -->
<p class="p1">사 56:9-12</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선지자의 어조가 여기서 갑자기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부드러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었는데 이제는 신랄한 책망과 고발로 그 기조가 바뀌었습니다. 그동안은 하나님의 평온한 초장에서 풀을 뜯던 양들이 이제는 하나님이 보내신 포식자들에 의해 큰 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lt;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gt;(9절).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유대 백성들을 삼켜 버릴 것을 가리키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후에 로마인들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멸망시킬 것을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심판하실 때에는 그 일을 위한 도구로 때로 이렇게 사나운 짐승들을 불러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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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6 -->
<p class="p1">게으른 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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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gt;(10절).</p>
<!-- paragraph:p0008 -->
<p class="p1">주님은 바리새인들에 대해 &lt;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gt;(마 15:14)라고 비판하셨습니다.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그랬습니다. 너무도 서글픈 모습이었습니다. 맹인들이었고, 벙어리 개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파수꾼이 맹인이면 적을 어떻게 경계하겠습니까? 눈먼 파수꾼이 어찌 위험을 분간할 수 있겠으며, 벙어리 개들이 어찌 위험이 닥쳤을 때 백성들을 향해 경고를 보낼 수 있겠습니까? 개들이 짖어서 목자를 깨우고 이리들을 쫓지 못한다면 양떼를 지키라고 개들을 풀어놓을 이유가 뭣이겠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다 그랬습니다. 백성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던 자들이 백성들의 잘못에 대해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고, 그 죄악의 결말에 대해서도 전혀 말해 주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선지자들에 대해서는 짖어댔고, 양들을 위협하는 늑대나 이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 게을렀고, 그 어떤 수고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웠고, 영혼아 평안히 쉬고 좀 더 자자며 끝없이 게으름을 피웠습니다.</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탐욕스런 개</p>
<!-- paragraph:p0011 -->
<p class="p1">&lt;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gt;(11절).</p>
<!-- paragraph:p0012 -->
<p class="p1">또한 그들은 지독하게 탐욕스러웠고 세상 영화를 좇는 일에는 열심을 부렸습니다. 그들은 많이 가지고도 자기가 가진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은을 사랑했지만 결코 은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전 5:10). 양떼를 돌보며 양을 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양떼로부터 뭔가를 갈취하고 빼앗았습니다. 모두가 제 길을 돌아보며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울 뿐 백성들이야 어떻게 되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시대 파수꾼들에 대해 &lt;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한다&gt;(빌 2:21)며 개탄했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고자 하고 자기가 속한 파당을 밀며 자기 가족을 일으켜 세우고 모든 것을 자기 생각대로만 해나가는데 몰두하여 백성들과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일들은 소홀할 뿐 아니라 다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완벽한 쾌락주의자들이라고 합니다. &lt;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gt;(12절). &lt;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gt;는 것은 &lt;내일도 오늘 만큼이나 우리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을 것이라&gt;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lt;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gt;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