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3n 얍복 나루터의 씨름(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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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3n
창 32:22-32
얍복 나루터의 씨름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었다면, 야곱은 기도의 조상이었습니다. 야곱처럼 충격적인 기도를 드린 사람은 없습니다. 그보다 더 전투적이고 공격적이며 호전적이며 치열한 기도를 드린 사람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오늘 본문이 야곱의 기도를 씨름이라고 했겠습니까? 우리말로 번역하면 씨름이지 원래는 싸움입니다. 얼마나 치열했으면 기도를 하나님과의 싸움이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과의 전투라고 했겠습니까? 정말 야곱은 그 유례를 찾지 못할 만큼 전투적인 기도를 드린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이 얍복 나루터의 씨름은 그 주체가 누구입니까? 야곱이 하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오셨습니까? 본문 24절을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라고 합니다. 씨름의 주체가 야곱이 아니라 어떤 사람, 아니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어지는 25절 상반절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역시 주어가 어떤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재산과 사랑하는 가족을 다 얍복강 건너로 먼저 보내고 홀로 그 나루터에 남아 절망하고 있는 야곱에게 시비를 걸어오신 분은 분명 하나님입니다.
왜 하나님이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오셨습니까? 그것은 야곱을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야곱에게 져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해 야곱이 이겼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그럼에도 그 얍복 나루터에서의 씨름은 야곱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고의로 야곱에게 져주셨기 때문입니다. 백두장사가 자기의 세 살 먹은 어린 아들과 씨름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아무리 백두급이요 천하장사라 하더라도 세 살 먹은 아들이 이깁니다. 왜냐면 아버지가 져주기 때문입니다. 왜 져줍니까? 아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한 번 이기고 나면 용기충천합니다.
얍복 나루의 모래밭에서 야곱에게 져주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도 이긴 사람인데 세상에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이름이 이스라엘인데 세상에 그 어떤 적이 두렵겠습니까? 아무리 저 강 건너에서 분노한 형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온다 해도 하나님을 이긴 마당에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이제는 야곱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붙어서 이겼습니다. 원래는 하나님과 겨루어 졌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이름은 그 반대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이 낙심한 자식 하나 구하려는 부모의 심정과 똑같습니까? 나는 져도 괜찮고, 남에게 모욕을 당해도 괜찮고, 무시당해도 괜찮으니 너나 다시 일어나라. 나의 바람은 자나 깨나 오직 그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주신 것은 그로 하여금 새출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앞에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저 앞에 가로놓인 강을 건너기 전에 이 얍복 나루터에서 내게 씨름을 걸어오시는 주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복 주시는 주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저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습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야곱의 이름을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아닙니다.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스로 고백하라는 뜻입니다. 그간의 삶을 결산하라는 것입니다. 그간의 삶의 내용을 자백하고 회개하라는 겁니다. 얍복 나루터에서 지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강을 건너서부터는 새출발하라는 겁니다. 비로소 ‘야곱입니다’ 라고 합니다. 야곱은 히브리어 동사 <아캅>에서 온 말입니다. 발목잡는 자, 강도라는 뜻입니다. 실제 그는 형의 발목을 잡고 나와 결국 장자권 마저 빼앗고, 눈 먼 아버지의 발목을 잡아 속였고, 외삼촌 라반의 발목을 잡아 그의 두 딸과 종과 가축을 제 것으로 삼았습니다. 얍복은 무슨 뜻입니까? 히브리어로 <야보크>입니다. 자신의 속을 다 털어내놓다, 다 비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그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으로 하여금 그간의 치부를 다 털어내 놓고 결산합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야곱은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날이 새려고 하는데도 여전히 야곱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결국 최후의 일격을 가합니다. 야곱의 환도 뼈를 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정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부리며 완고하게 굴면 때로 허벅지 뼈를 쳐서 치명상을 입힙니다. 그제서야 야곱은 ‘예. 제가 야곱입니다. 제가 강도요 협잡꾼입니다. 오늘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말을 듣고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제는 세상과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과 씨름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하십니다. 더는 잔머리, 교활하게 비겁하게 살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과 씨름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미시고, 우리에게 져주실 태세가 되어 있는 하나님과 씨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저 얍복강 건너편에서 분노한 에서와 400명 군사가 맹렬히 달려오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우리는 얍복나루에서 옛 야곱을 청산하고 새 이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얍복 나루터에 내 모든 과거를 깨끗이 묻고 새 출발해야 합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처절한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그는 두려움과 비굴함 대신에 감사와 용기와 희망으로 충만해졌습니다. 허벅지 뼈가 부러져 절룩거렸지만 얍복 나루터를 건너는 야곱에게 저 멀리서 아침해가 비취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새 이름이 여러분의 이름이 되고, 야곱의 새 출발이 여러분의 새 출발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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