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3m 어느 봄날(마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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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3m
마 13:1-9
어느 봄날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절 상반절입니다. “그 날”이라고 합니다. 그 날은 어떤 날입니까? 갈릴리의 어느 봄날이란 뜻입니다. 본문 1,2절이 묘사하는 어느 봄날의 갈릴리 호숫가의 정경을 보십시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이 호숫가에서 호수를 등지고 뭍에서 말씀하셨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몰려들어 호숫가의 한 배에 올라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화두는 씨 뿌리는 얘기, 농사짓는 얘깁니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계절적으로 봄이기도 했지만, 주님의 화술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청중들 뒤쪽으로 펼쳐진 밭에서는 아마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현장감 있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때마침 새가 날아갑니다. ‘날아가는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천부께서 저 새를 기르시는데 너희는 저 새보가 귀하다’고 하십니다. 저 샤론 들에서 백합화 향기가 풍겨옵니다. ‘저 백합화를 보라. 저 꽃보다 솔로몬의 영광이 못했다’고 합니다.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에는 포도나무를 바라보시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현장감 넘치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으로 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뭍에서 듣는 사람은 조각배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있지만, 주님은 저 뒤편 씨를 뿌리는 농부를 바라보시며 어느 날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렸다고 하십니다. 보리는 가을에 뿌립니다. 우리와 팔레스틴은 시차가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보리는 10월 하순 즈음에 파종합니다. 여기서 씨를 뿌렸다는 것은 밀일 것입니다. 밀은 3월 중하순에 뿌립니다. 지금이 밀을 파종하는 시기입니다. 원래 갈릴리는 곡창지대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비해 땅이 넓고 좋다는 뜻이지, 팔레스틴은 전반적으로 땅이 좋지 않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는데 주님 시대에 갈릴리는 엉겅퀴도 많은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어떤 씨는 좋은 땅, 돌밭, 길가에 떨어집니다. 실제 갈릴리 밀 이삭은 낱알이 최저 34개에서 최고 100개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30, 60, 100배도 근거가 있습니다.
이 비유에 대한 주님의 해석을 한번 보십시오. 19절 이하입니다. 씨앗은 복음입니다. 다양한 토양, 즉 밭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 토양에 속하는지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토양은 <길가>입니다. 4절입니다.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길가는 밭둑을 말합니다. 어떤 곳은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닌 단단한 땅이기에 씨앗이 그대로 길 위에 노출됩니다. 그러면 당장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사람들 가운데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길가에 같은 마음은 굳을 대로 굳어 있어서 말씀이 마음 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마음 문이 너무도 굳게 닫혀 있어 말씀이 수용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뿌려도 아무런 감동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길바닥에 말씀이 노출되어 있기에 즉시 새가 와서 먹어버립니다. 19절에서는 새가 악한 자요, 마가복음에서는 사탄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8장 12절을 보면 사탄이 말씀을 채가는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 마음이 굳어서, 마음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말씀의 씨가 심기지 않으면 즉시 사탄이 채갑니다.
두 번째 토양은 <돌밭>입니다. 5절 이하입니다.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짝밭에는 농사가 안 됩니다. 흙이 얕기에 작물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겨우 싹은 냅니다만 뿌리는 내리지 못합니다. 이것에 대한 주님의 해석을 보십시오. 20절 이하입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밭은 밭인데 흙이 깊지 못한 돌짝밭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의 씨가 뿌려지면 일단 아멘하며 접수는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기뻐합니다만, 거기까지입니다. 돌아서면 식어버리고, 조금만 시험이 오면 엎어지고 자빠집니다. 말씀을 잘 받으나 뿌리를 못 내립니다. 이런 신앙을 소위 냄비신앙이라고 합니다.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는 신앙입니다. 마음의 토양이 돌짝밭과 같아서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툭하면 시험에 들기에 목회자가 상대하기에 난처합니다.
세 번째는 <가시밭>입니다. 7절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 말씀에 주님의 해석은 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음이 가시밭과 같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말씀이나 믿음이나 교회보다는 항상 세상적 욕망과 물질에 대한 욕심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성령을 체험하기는 해도 마치 가시나무에 기운이 막히듯 말씀이나 성령의 역사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가시나무에 의해 성령의 역사가 다 막혀버리는 신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시나무는 팔레스틴 농부를 가장 괴롭히는 엉겅퀴입니다. 엉겅퀴는 번식력이 강하고 뿌리를 넓고 깊게 뻗치기에 그 주변에 작물이 자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들으면서 머리로는 항상 딴 생각을 합니다. 지금 예배중이나 마음은 콩밭에 가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옥토>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은 어떤 마음을 가진 자입니까? 23절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한마디로 씨가 먹히는 마음밭입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이게 옥토입니다. 말씀을 받아 마침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왜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적 만족을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예배의식상 필요에 의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설교하느라 애쓰는 목사 체면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 말씀을 깨닫고 그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씀을 옥토인 내 마음밭에 심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마음밭을 손질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농부들은 땅을 갈아엎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농사 중 가장 힘든 게 땅을 갈아엎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그 일을 소가 다 했습니다. 무엇을 뿌리거나 심으려면 가장 먼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고 했고, 예레미야도 ‘마음밭을 갈아엎으라’고 촉구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음밭을 갈아엎으십시오. 묵은 땅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열매를 수확하여 주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웰빙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겨우내 닫아 두었던 우리의 묵은 마음밭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을 심기에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시기에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우리로 인해 행복해 하시고 보람을 느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밭을 확인해 보십시오. 묵어 딱딱한 마음밭을 갈아엎으십시오. 그래서 올해는 최소 30배에서 최고 100배까지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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