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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엇갈림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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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처음 하와를 본 아담의 탄성입니다. &lt;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gt;(창 2:3). 그러나 선악과를 범한 후에는 자기에게 여자를 주신 하나님을 은근히 힐난합니다. &lt;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어 내가 먹었나이다&gt;(창 3:12). 하나님이 괜한 짓을 하셔서 벌어진 일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하나님께 그 책임의 소재가 있다는 도발입니다. 사실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딱 한 가지 금기만 잘 지키면 나머지는 다 자유로웠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지켜야 할 그 규칙이라는 것도 힘든 노동이나 까다로운 절차가 아니라 단지 한 나무의 실과만 따먹지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들 사이에 묘한 의혹 하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lt;우리의 자유란 과연 완전한 것인가?&gt;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의문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처음에는 죽는다는 경고 때문에 두려워 망설였지만 점점 그게 엄포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드디어 하와가 누리고자 한 그 자유가 필연적으로 하나님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즉 &lt;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gt;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와에게는 하나님의 금기를 깨는 것이 마치 자신의 행복을 보장하는 일처럼 여겨지게된 </span><span>  </span><span>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관심과 하와의 관심은 서로 어긋날 수밖에 없었습니다.</span><span> </spa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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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 </p>
<!-- paragraph:p0003 -->
<p class="p3">바로 그때 다가온 뱀의 유혹, &lt;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되리라&gt;. 이는 결국 하나님이 너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뜻에 다름 아니므로 졸지에 하나님이 &lt;믿을 수 없는 존재&gt;로 전락하면서 하와는 비로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존재를 무시하는 일쯤이야 하등 불편해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의 뿌리란 하나님의 관심으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쯤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 장애물을 별로 두렵지 않게 여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무슨 짓을 하건 하나님이 내 운명에  그닥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존재로 치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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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 paragraph:p0005 -->
<p class="p3">그러나 신앙이란 나의 관심을 정확히 하나님의 표적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내 삶의 관심을 전격적으로 바꾸어 시간의 우선순위를 변화시키는 일인 동시에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삶에서 상대방의 관점을 포용하는 삶에로, &lt;나만의 자리&gt;에서 &lt;너와의 자리&gt;를 향해 과감히 옮겨가는 결단과도 통하는 일입니다. 한 가정도 마찬가집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가 서로 꼼짝도 않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고집하면서 오직 상대에게만 자기 쪽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강요하는 곳에는 영원한 어긋남만이 있을 뿐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 class="p3"><br></p>
<!-- paragraph:p0007 -->
<p class="p3">교회도 사회도 그렇습니다. 사랑의 온기와 활력이 없습니다. 다 &lt;너 때문이다&gt;며 모두가 서로에게 &lt;적&gt;일 뿐이어서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점을 극명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전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오직 &lt;나&gt;만 내세웁니다. 책임공방 앞에서 하와와의 관계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몸은 에덴에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에덴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에덴의 생명이 사라진 그곳에는 죽음의 황량함과 적막감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루빨리 &lt;나&gt;만이라는 욕심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 속으로 자신을 힘있게 끌어들여야 합니다. 유치함과 이기심이라는 부끄러운 자리에서 선뜻 일어나 하나님의 과녁인 십자가를 향해 힘껏 달려가야 합니다. </p>
<!--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3">봄이 오는 길목, 눈이 시리도록 맑은 햇살이 비치는 이 고난의 절기에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할 경건과 회개란 다름 아닌 바로 그것일 터입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