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고로드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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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실시 예정인 크림반도의 주민투표로 인해 지금 전쟁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른 우크라이나 지방의 한 마을인 샴고로드(Shamgorod). 세 명의 유대인 어릿광대가 그 마을의 한 여관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그 마을에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절기인 <부림절>을 기념하는 연극을 공연할 참이었습니다. 부림절이란 페르시아의 장군 하만의 유대인 대학살 계략이 결국은 유대인 왕후 에스더의 기지로 급반전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샴고로드를 찾은 세 어릿광대들은 거기서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접합니다. 부림절 사건과는 달리 불과 1년 전 그 마을에서는 대대적인 유대인 살육사건이 벌어져 모든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단지 그 여관 주인인 베리쉬와 그의 딸인 한나만이 겨우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관주인 베리쉬는 분노와 증오에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딸 한나는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참혹한 윤간을 당해 완전히 실어증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유대인 어릿광대들은 부림절 축제연극 대신 그런 대학살의 비극 앞에서 조차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는 즉흥극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쉬비츠에 끌려가 가족 모두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엘리 위젤의 희곡 <하나님에 대한 심판>(The Trial of God)의 내용입니다.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자신이 소년시절 경험한 숨막히는 죽음의 현장과 그 수용소에서 목격한 유대 랍비 세 사람의 하나님 재판 촌극을 떠올리며 그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전체가 제3막으로 이뤄진 그 연극은 특히 자기 여관에 <하나님을 출입금지> 시키고, <구원을 애타게 기다렸건만 온 것은 결국 구원자가 아니고 살인자들이었다>며 절규하는 여관주인 베리쉬의 하나님 고발이 몹시 가슴을 저리게 하는데 검사로 분한 그녀는 <하나님의 자비를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대신 하나님의 잔인함을 말하라>고 외치고, 또 <나는 왜 하나님이 살인자들에게는 힘을 주시고 무고한 희생자들에게는 눈물과 절망만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인간의 대량학살에 대한 신학적 고발과 하나님에 대한 유죄판결로 막을 내리는 엘리 위젤의 그 작품은 주제 자체가 몹시 준엄하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롭기 짝이 없는 대단히 도발적인 문제작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인터넷으로 <신이 보낸 사람>을 봤습니다. 영화는 시종 어둡고 거칠고 투박했습니다. 어떤 이는 끝까지 순교하고, 또 어떤 이는 <이제부터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한 마디로 구차한 목숨을 이어갑니다. 남한에서는 단지 <개독>이라는 모욕이 두려워 비굴한 <익명의 신자>로 살아갈 뿐인데, 북한에서는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고문과 매질, 개나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끔찍한 인권 실상. 영화는 그런 북한의 참혹한 현실과 정면 승부를 합니다. 그래서 많이 불편하고 불안합니다. 탈북을 시도하다 총살을 당한 사람이나 매질을 당하다 죽은 사람들을 아무 곳에나 내버리고, 시체들이 버려진 그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죽은 자들의 물건을 챙기는 소녀도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샴고로드의 연극>을 생각했습니다. 김진무 감독의 <신이 보낸 사람>은 영락없는 엘리 위젤의 <하나님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샴고로드의 연극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변호인이 되기를 원치 않는데, <신이 보낸 사람>에서는 주인공인 주철호마저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는 말을 남기고 총살당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을 끊임없이 심판대에 세우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그분의 변호인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북녘 지하교회 성도들의 몰살과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침묵, 말도 안 되는 인간사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신앙의 진정한 본질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순식간에 지나가는 엔딩 크레딧, 잠시 흐르는 무거운 침묵. 그리고 영화는 다시 묻습니다. “남조선이 가나안 땅입네까?”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