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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312w 신명기 강해 20</p>
<!-- paragraph:p0002 -->
<p class="p1">신 6:10-15</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15]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p>
<!-- paragraph:p0005 -->
<p class="p2"><br></p>
<!-- paragraph:p0006 -->
<p class="p1">지난주에는 쉐마를 보았습니다. 신명기 6장 4-9절입니다. 쉐마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유일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당대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여호와 계명을 가르치고, 심지어는 손목에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새겨 생활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게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 쉐마의 구체적 내용입니다. </p>
<!-- paragraph:p0007 -->
<p class="p2"><br></p>
<!-- paragraph:p0008 -->
<p class="p1">오늘은 쉐마에 이어지는 축복의 약속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복의 약속은 쉐마를 잘 지키면 누리게 될 복입니다. 이미 6장 2-3절에서 복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2절에서는 율법을 잘 지키고 살면 장구하겠다고 했습니다. 3절 하반절에서는 크게 번성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조금은 막연했던 약속을 더욱 구체적으로 얘기합니다.</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10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쉐마를 실천하며 살면 조상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하시되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을 얻게 하신다고 합니다. 성읍은 삶의 터전, 활동영역, 사회생활의 장을 의미합니다. 크고 아름다운 성읍이란 내가 보람찬 사회생활을 하며 내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 합당한 좋은 도시이고, 바로 그런 도시에서 살도록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내 삶의 터전이 어떠한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시아 국가 중 우리나라는 국적 포기자가 꽤 많습니다. 통계를 보니 한 해에 23,000명 정도입니다. 일본은 한 해 평균 800명, 대만은 700명 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우리 성읍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살아가기에 적절하거나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찾아 우리 성읍을 포기하고 떠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쉐마를 잘 지켜 행하면 네가 건축하지 않은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고 거기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네가 건축하지 않은 성읍을 얻게 하시겠다는 말은 은혜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선물로 주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정한 복이란 언제나 값없이 받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은 감사한 겁니다. 우리 노력의 보상이나 대가가 아닙니다. 내가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읍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그렇게 쾌적하고 아름다운 성읍을 건축할 수 없습니다. </p>
<!-- paragraph:p0013 -->
<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이어지는 11절입니다.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여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특징도 보십시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크고 쾌적한 성읍뿐 아니라 온갖 필요한 집기가 다 갖춰진 아름다운 집도 주십니다. 우물도 보십시오. 물 귀한 팔레스틴에서 우물은 생존의 절대조건입니다. 우물도 유산 목록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귀한 생명줄인 우물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다고 합니다. 게다가 포도원과 감람나무 과수원도 그냥 주신다고 합니다. 감람나무 밭은 생활수단, 즉 직장이나 가업을 뜻합니다. 이것조차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 전제들을 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다고 합니다. 집, 우물, 포도원과 감람원을 다 주십니다. </p>
<!-- paragraph:p0015 -->
<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고,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잘못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열심히 내 힘으로 건설하고, 물이 잘 나오는 샘을 파고, 내 힘으로 포도원을 일구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하나님이 은혜로, 복으로 주신다고 합니다. 주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 사는 것은 믿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쉐마를 지키듯,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다 선물로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완벽히 거꾸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때문에 하나님 계명대로 못 살고 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 성읍, 집, 우물, 포도원은 우리 힘이나 능력, 재주로 갖추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추구하며 살고, 내 심장에 기록하고 내 후손에게 가르치고, 대문에 기록해 들고날 때 입을 맞추며 사는 게 우리의 소임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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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우리는 사실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준비하고 갖추려고 합니다. 거기에 노심초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그 사실을 예견하시고 우리에게 두 가지 처방을 일러주십니다. 12절입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우리 믿음이 흔들릴 때, 약해질 때, 우리가 의식주 문제에 매몰될 때, 조심해서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출해 주신 주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종, 마귀의 종 가운데서 구원하여 내신 주님을 생각하며 다시 자세를 가다듬으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의 말씀과 계명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처절한 희생으로 우리를 구하셨습니까?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19 -->
<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또한 15절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사랑과 질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세상에 추파를 던지면 엄청나게 질투심을 발동하여 진노하십니다. 사랑에 대한 배신이 가장 아픕니다. 우리가 우상에게 영혼을 파고, 우리가 세상에 눈길을 돌리면 주님은 견딜 수 없어 하십니다. 하나님도 질투를 다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기에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이 감정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힘과 뜻과 내 모든 존재를 바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21 -->
<p class="p2"><br></p>
<!-- paragraph:p0022 -->
<p class="p1">이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를 배신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랑을 배신하면 불같은 질투심을 발동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시 한번 자신을 성찰하며 자세를 가다듬읍시다. </p>
<!-- paragraph:p0023 -->
<p class="p1"><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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