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5n: 솔로몬의 당부(전 12:1-11) 청년부 헌신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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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5일 주일오후예배/청년부 헌신예배
본문: 전 12:1-11
제목: 솔로몬의 당부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오늘이 청년주일인데, 청년이 누굽니까? 먼저 올해 하나님의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 2,000세입니까? 사람 식으로 따지면 예수님의 연세가 약 2,011세네요. 하나님의 연세는 영원이십니다. 하나님의 연세가 영원이시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실로암회 어른들도 소녀시고 소년입니다. 다 청년입니다. 자식이 70, 80세여도 100세 부모 앞에서는 아직 철없는 자식입니다. 우리가 영원이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한, 우리는 영원한 청년입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오늘 청년주일을 보내는 게 옳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전도서는 지혜의 화신이요 역사의 전무후무한 현자인 솔로몬의 당부입니다. 영원이신 하나님 앞에서 만년 청년으로 사는 우리에게 지혜의 화신인 솔로몬이 당부한 말씀을 몇 가지 생각해 봅니다.
우선, 청년의 때를 소중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전도서 11장 9절을 봅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인생의 황금기를 청년의 때를 마음껏 즐기라고 합니다. 기뻐하며 원하는 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후에는 하나님의 결산이 있다는 겁니다. 청년의 시기를 어떻게 살았는지 나(하나님)하고 셈하자는 겁니다. 청년의 시기가 소중한 만큼 그 청년의 때를 하나님이 짚고 넘어가신다는 겁니다. 따라서 절대 청년의 때를 허송세월 보내지 말라는 겁니다.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시기인 만큼 책임적으로 살아야한다는 겁니다. 정말 청년의 시기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때입니다. 야심만만하지요, 혈기왕성하지요,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만큼 소중하기에 하나님이 훗날 반드시 우리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의 시기를 결산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만큼 진지하고 책임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솔로몬이 청년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까?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1절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청년의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가 청년의 때이니 여러 일을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시 창조주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기억하라는 말씀은 소극적이고 정적으로 들리기 쉬운데 그렇지 않고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의미입니다. 적극적으로 창조주를 알고 신앙하라는 겁니다. 청년들의 창조주를 기억하는 일은 자칫하면 습관적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마지못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신앙생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역동적으로 신앙생활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혈기왕성하게 하라는 겁니다.
우리 청년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청년들이 예배를 가볍게 생각하는 겁니다. 젊을 때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는 겁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다 헛되고 부질없다고 합니다. 젊을 때 자기의 정열을 바쳐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가장 값지다는 겁니다. 교회 못 나오는 분들, 예배 참석 못하시는 분들은 온갖 사유가 많습니다. 다 헛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제쳐두고 무엇이 중요한 게 있습니까? 그러니까 순발력 좋을 때 청년들이 맹렬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게 옳다는 겁니다. 물론 젊을 때는 유혹도 많고, 회의도 많습니다. 또 젊을 때는 무한 자유를 갈망합니다. 비록 한 시간이지만 교회에 묶여 정형화된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이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품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솔로몬처럼 영화롭게 산 사람이 없습니다. 전도서는 그의 말년에 쓴 겁니다. 그 화려한 인생을 산 뒤에 쓴 금언서가 전도서입니다. 다 헛되고 하나님 예배하는 일이 가장 복 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어린 시절에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다윗, 사무엘, 예레미야, 베드로, 스데반이 다 그렇습니다. 혹 청년들 가운데는 내가 너무 일찍 예수를 믿은 게 아닌가? 생각하며 억울해 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일찍 예수를 알아서 구속당해서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젊을 때 부름을 받은 것이 복 된 겁니다. 예비역은 제대할 때 계급을 결정합니다. 장군으로 제대하면 평생 장군입니다. 그런데 장군도 이등병으로 강등되면 그 사람은 평생 이등병입니다. 우리가 젊을 때부터 예수를 믿고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병장 계급으로 전역하는 겁니다. 그러나 막판에 예수를 믿으면 이등병으로 제대하는 겁니다. 그는 이등병으로 부끄럽게 영원을 살아야 합니다. 젊을 때 좀 더 열심히, 좀 더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는 복된 청년이 되십시오. 이것이 인생 최고의 복입니다.
다음은 젊을 때 헌신하라고 합니다. 젊을 때 희생하라는 겁니다. 본문 3-7절을 보면 우리가 왜 청년의 때를 놓치면 헌신할 수 없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집을 지키는 자가 떤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하체가 떨리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이어지는 힘 있는 자가 구부러진다는 것은 허리가 굽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빨이 빠지고, 눈이 어두워집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주님을 위해 헌신이 보장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심방해 보면 왜 내가 좀 더 나이가 어릴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희생하지 못했을까 후회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고 싶어도 몸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십시오. 일을 할 수 있고, 시간이 보장될 때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어떤 작은 헌신이라도 셈하고 계십니다. 알뜰히 다 보상하십니다. 정말 젊은 시절에 예수를 믿고 헌신하지 못하면 반드시 언젠가는 혀를 깨물며 후회하게 됩니다. 그만큼 기회를 주셨고 헌신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셨는데,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때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소용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존 칼빈이 <기독교 강요>를 썼습니다. 그는 26살 때 그 책을 썼습니다. 루터도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걸고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 때가 26살 때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대 선교사들인 언더우드나 아펜젤러도 다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주님도 30대 초반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왜 주님이 30에 공생애에 들어가셔서 30대 초반에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그만큼 청년의 때가 값지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때에 청춘을 불사르고 십자가에서 자기의 온 몸을 바친 겁니다. 한 인생에 있어 가장 고귀한 시간을 인간의 구속을 위해 주님이 송두리째 바친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입으로 믿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머리도 아닙니다. 가슴으로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온 몸으로 믿는다는 것이요, 헌신과 희생으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주님처럼 십자가에 내 온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겁니다. 다들 입으로, 가슴으로 예수를 믿습니다만, 희생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의 활력이 넘칠 때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면 그게 가장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청춘을 바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진정한 신자가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청춘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는 청춘을 바치지 않습니다. 쓸모없을 때 바치려고 합니다. 유치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제가 훗날 천국가면 누가 더 복될 것 같습니까? 난감하십니까? 제가 더 복될 것 같습니까? 감사합니다. 대통령이야 이 땅에서는 최고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미 이 땅에서 보상을 다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은 천국가면 괜찮습니다. 살만해집니다. 이땅에서야 날마다 이리저리 욕 먹고 무시당하지만, 천국가면 그때 보상을 받습니다. 훗날 천국가서 잘난체하고 대학교수, 대통령, 장관하다 왔다고 하지 마십시오. 천국가면 그런 것은 별 볼일 없습니다. 이미 다 보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명 달랑 놓고 교회학교 교사하다 왔다고 하면 보상이 큽니다. 청년부 임원 하다가 왔습니다. 좋은 회사에서 잘 나가다가 왔다고 하시지 말고, 교회 청소하다가 왔습니다, 안내 서다가 왔다고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보상이 있습니다. 다 부질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희생하십시오. 청년들이여, 주님을 위한 헌신이 얼마나 값진가를 깨달으십시오.
다음은 말씀을 열심히 배우라고 합니다. 9절 이하입니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때로는 찌르는 채찍 같고 깊이 박힌 못처럼 아플지라도 청년의 때 열심히 배우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은 다 한 목자가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육성입니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젊을 때 더 배우라고 합니다.
제가 지난 주일 낮 설교 때 횡설수설했습니다. 저는 아직 60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주일날 이삭, 야곱, 에서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모르고 설교했습니다. 저인들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어떻게든 젊을 때 말씀을 보셔야 하고 배우셔야 합니다. 골수에 새기셔야 합니다. 여러분, 설교란 잘한다고 은혜 받는 것도 아니고 못 한다고 은혜를 못 받는 것도 아닙니다. 설교를 잘 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라면 주님의 설교를 듣고도 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천사 같은 얼굴로 성령이 충만해서 설교한 스데반을 왜 사람들이 반발하며 돌을 들어 살해했을까요? 설교는 듣는 사람이 잘 들어야 합니다. 젊을 때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특히 청년들은 편견이 적습니다. 가장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아전인수식으로 제 편리한대로 재해석을 하는 때가 아닙니다. 청년의 때, 그 순수한 마음,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면 은혜가 큽니다. 또한 이때에 받은 은혜가 평생을 갑니다. 나이 들면 들을 때는 은혜스럽지만, 돌아서면 다 잊습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평생에 내 영혼의 자양분이 됩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심령 안에 축적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청년의 때에 말씀을 부실하면 평생 그 사람의 신앙체질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청년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면 그 사람의 신앙체질이 강해집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12장 제일 마지막 절, 전도서의 제일 마지막절을 보십시다. 12장 14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11장 9절과도 같습니다. 이게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훗날 하나님과의 결산이 없으면, 함부로 살고 막 사는 게 실속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그때의 실리만 챙기며 사는 게 가장 바람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결산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살 수 없고, 황금시절인 청년의 때를 허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희생에 앞장서야 합니다. 말씀을 내 안에 축적하는 일에 더욱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설교 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9hycgnxK7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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