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烏瞰圖(오감도)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이상의 烏瞰圖)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된 이 시는 제목과 문체, 그리고 내용 자체가 파격을 넘어 아예 정신이상자의 글이 아닐까 할 정도로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체 띄어쓰기가 무시된 채 연달아 이어진 문장 속에서 열세 명의 아이들이 서로 무섭다고 한다는 내용의 시 오감도(烏瞰圖). 사람들은 처음 설계도의 <조감도>(鳥瞰圖)가 식자공의 잘못으로 획 하나가 덜 그어진 오감도(烏瞰圖)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지만 결국 <새 조(鳥)>가 아니라 <까마귀 오(烏)>자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더욱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독자들은 그것이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아 질식할 것만 같았던 일제하 식민지 상황에 대한 깊은 공포와 절망감을 표현한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이상의 그 천재적인 시적 통찰력과 문학적 감수성에 다시 한 번 탄복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듯 총독부 검열관들이 아무리 트집을 잡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게 한 그의 문학적 난해함과 치밀했던 시 정신이야말로 일제하 이상 문학의 최대 무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막다른 골목이 되고 말 도로 위를 미친 듯 질주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질주 속에서 드러나는 공포의 표정들, 어느 누구도 마음 놓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불신의 관계, 십삼이라는 숫자가 주는 불행의 예고, 꿈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현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검은 먹물이 쏟아져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된 설계도. 


이렇게 그는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서 끊고, 어디에서 다시 이어가야 할지도 모르게 뒤엉켜버린 오감도적 현실을 띄어쓰기조차 완전히 무시한 난삽한 연작시를 통해 형상화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이상이 건축기사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에게 조감도 그리기란 익숙한 작업이었을 테고, 때로 일이 벽에 부딪쳤을 때 느꼈을 좌절감과 암울한 그 시대 상황이 서로 만나면서 어느새 구겨져 파지가 되어버린 <오감도>의 현실에 누구보다도 깊이 절망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상의 시가 현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타개해 나가지 못하고 나약한 지식인의 병적인 절망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은 접어두고라도 그럼 이 시대 우리들은 그런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설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양식을 위해 도로 위를 정신없이 질주하며 때로 직면하는 막다른 골목 앞에서의 좌절과 사람들과의 예기치 못한 갈등으로 한없이 움츠러드는 자신의 모습, 어디서부터 꼬여 이 모양이 되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고 또 끊어졌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줄글. 그래서 <십삼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하고 독백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아이적의 꿈 위에 현실의 먹물이 여기저기에 떨어지면서 차츰 내가 원래 어떤 그림을 그리려 했는지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인생 설계도. 분명 우리에게는 지금도 그런 오감도적 불안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게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상과 절친했던 김기림은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사람>이라고 평했습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하고 물었던 소설 <날개>의 작가 이상, 그에게 비친 당시 세계는 그야말로 고독한 까마귀가 바라본 캄캄한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일절 95돌을 맞은 오늘까지도 일본은 여전히 독도를 탐하고, 종군위안부 만행을 부인하며, 동해 병기(倂記)까지도 결사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맙시다. 여전한 오감도의 현실 앞에서 십삼 인의 아이들처럼 두려워 떨지 맙시다. 어느새 다시 3월이 왔습니다. 새봄, 세상 그 무엇도 이제는 우리를 주저앉히거나 우리의 질주를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곧 십삼 인의 아이들도 더는 무서워하지 않게 될 것이고, 막다른 골목도 트일 것이며, 오감도의 오(烏)자도 결국 오자(誤字)였음이 밝혀질 것입니다.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