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5m: 남자와 여자(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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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5일 주일낮예배
본문: 창 2:18-25
제목: 남자와 여자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남자가 먼저 입니까? 여자가 먼저 입니까? 우리 상식으로는 여자가 사람을 낳으니까 여자가 남자를 낳았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성경은 오히려 남자가 먼저고 여자는 나중에 남자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8절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그런데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분명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 둘 다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겁니다. 그러나 창조의 우선순위는 분명 다릅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게 누구 입니까? 아담입니다. 남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첫째 날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둘째 날은 대기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후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날은 각종 나무와 채소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넷째 날은 하늘의 별, 달을 창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다섯째 날은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나서도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왠일인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남자만 창조해 놓고 보니 홀아비로 사는 게 좋지 않게 보였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남자는 처음부터 돕는 배필을 필요로 했던 2% 부족한 존재였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와는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해 살을 채우시고, 여자를 만드셨습니다(21-22). 아담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23절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여자는 남자와 동시에 만들지 않고 나중에 만드셨습니다. 이 사실 때문에 남자가 여자에 대해 기득권을 주장합니다.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여자를 나중에 만드셨냐는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만든 게 완성도가 높습니다. 여자는 자신들을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남자들 역시도 그 사실 때문에 여자를 자기 부속품쯤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남자는 재료가 흙입니다. 흙은 무기물입니다. 여자는 그 질료가 남자의 갈빗뼈입니다. 유기물입니다. 흙은 1차 산업이고, 갈빗대는 2차 산업입니다. 남자는 1차 산업품이고 여자는 2차 산업품입니다. 소재가 다릅니다. 남자들은 노하우 없이 하나님이 처음 만드셔서 세련미가 떨어집니다. 여자는 남자를 한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기에 훨씬 섬세하고 아름답고 세련되었습니다. 유전학적으로도 여자가 염색체가 하나 더 많습니다. 이것은 더 진화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여성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남자는 미련하게 힘만 씁니다. 그러나 여자는 훨씬 더 남성에 비해 지혜롭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입니다. 남자가 그럴 것 같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선악과도 남자가 따먹고 여자에게 준 게 아닙니다. 따먹지 말라고 하니까 남자는 미련하게 그쪽으로 눈길도 안 줬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선악과를 쳐다봅니다. 창세기 3장 6절을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고 합니다. 따먹지 말라고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결국 뱀이 유혹하자 선악과를 따먹고 남자에게도 줘서 공범을 만듭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했는데 냉큼 따먹는 걸 보십시오. 남자는 차라리 순진한데 여자는 약삭빠르고 독합니다.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돈을 잘 벌 것 같습니까? 안 벌어 그렇지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잘 법니다. 남자는 기껏해야 사오백 만원이지만, 여자는 한 건에 수천만 원입니다. 어느 날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이사했다고 하면 틀림없이 여자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남자는 그럴 재주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도전한 것도 여자입니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남자들이 목숨 걸고 전쟁에서 가져온 게 다 여자에게 갖다 바친 겁니다. 남자는 그저 여자들 편리하게 하려고 냉장고 만들고 세탁기 만들지만, 여자들은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떱니다. 그런데도 설문조사를 해보면 다시 태어나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냐고 하면 절대 안 한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다 바보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남자와 여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을 보겠습니다. 여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 하반절입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에베소서 5장 22절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골로새서 3장 18절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베드로전서 3장 1절입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오직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성경이 여자에게 복종을 강요합니까? 디모데전서 2장 12절 이하입니다.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하와가 남편과 상의 없이 혼자 마귀와 수작하다가 선악과를 따먹은 겁니다. 그래서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이 안 되겠다 싶어 여자를 남자의 권위 아래에 두게 한 겁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대등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계질서를 깨면 그 가정은 불행해 집니다. 늘 불행은 가정의 위계질서를 깬 데서 시작됩니다. 이 무슨 진부한 소리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성서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녀들도 절대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사라졌기에 진정한 권위를 배울 데가 없어진 겁니다. 남편에게 아내가 복종해야 자녀들도 배워서 부모에게 복종하는데, 그런 교육적 효과를 가정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위기가 온 겁니다. 모든 주권이 아내에게로 다 갔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이런 극단적인 말씀을 들어보셨습니까? 이게 과장된 말씀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한 절대적인 요건입니다. 아내들아 새벽기도하라는 게 아닙니다. 아내들아 여전도회 회장하라는 게 아닙니다. 아내들아 목사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가 아닙니다.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목사에게 복종해야 복 받는다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복 받는다고 합니다.
남편에게는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에베소서 5장 25절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또 2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남자가 아내를 때리는 건 자기 몸을 치는 겁니다. 아내가 남자의 갈빗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갈빗대를 위하고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고 위하라는 겁니다. 남자가 여자를 치면 여자만 아픈 게 아니라 남자도 아픕니다.
물론 아내의 순종도 남편의 아내 사랑도 말만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갈수록 어렵습니다. 왜냐면 요즘 문화가 그렇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부 중 누가 사랑하며 삽니까? 서로 사랑하며 백년해로한다는 건 기적입니다. 그러나 길은 있습니다. 말씀이 일러준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정말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 주님이 자기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생연분으로 만났다가 평생원수로 끝납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내리신 분부를 청년주일이요 가정의 달이며, 가정의 날인 오늘 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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