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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40216m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삼상 1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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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0216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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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삼상 16:6-13</p>
<!-- paragraph:p0003 -->
<p class="p1">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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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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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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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윗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사람입니다. 주전 1077년에 1037년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한 이스라엘의 제2대 왕입니다. 초대 왕은 사울입니다. 사울도 40년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다윗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크게 엇갈립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면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울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15장 11절을 보면,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합니다. 사울에게는 왕 삼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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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이새의 일곱 아들이 하나님 마음에 안 들었는데, 막내 다윗은 마음에 듭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세웁니다. 사무엘의 눈에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맏이인 엘리압이 좋아보였습니다. 키도 크고, 용모가 준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며,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달리 중심을 보신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키와 용모로 사람을 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속사람을 보시는 겁니다. 만일 하나님마저도 키와 용모로 사람을 뽑으셨다면 바울 같은 사도는 뽑히지 못했을 겁니다. 물론 다윗은 키도 용모도 남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2절입니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용모가 아니라 그의 중심을 마음에 든다고 하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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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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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선 다윗은 자타 공인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의 직업은 목동이었지만, 감성이 풍부해 어릴 때부터 시를 많이 썼습니다. 시편의 절반이 다윗의 시입니다. 연주에도 뛰어났습니다. 다윗이 하프를 뜯으면 귀신 들린 사람도 정신이 멀쩡해졌습니다. 또한 그보다 전쟁을 많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라가 각 지파대로 갈기갈기 찢겨있었는데 그것을 통합해 통일왕국을 이룹니다. 정치가요 전략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점을 본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을 비교합니다. 그가 골리앗과 대결할 때 그는 아직 소년이었습니다. 반면 블레셋 군대의 대장인 골리앗은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입니다. 한 규빗은 44.5cm니까 여섯 규빗은 2m가 넘습니다. 골리앗이 입고 있던 갑옷은 5천 세겔이니 200kg 정도입니다. 당시 골리앗이 지휘하던 군대는 천하무적입니다. 어느날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에 나가있던 형들에게 갔다가 기가 막힌 꼴을 봅니다. 골리앗이 한껏 이스라엘을 조롱하는데, 아무도 그에 맞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그를 대항하여 싸우려 하나, 맞는 갑옷도 없고, 칼이나 창도 맞지 않았습니다. 맨몸으로 조약돌 들고 골리앗 앞에 섭니다. 그때 다윗이 한 신앙고백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 이하입니다.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그러면서 물맷돌을 날렸는데, 그 조약돌이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습니다. 목동 다윗은 물매질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돌이 날아가 사람 이마에 박히려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야 합니까? 류현진 선수가 공을 던지면 포수 글러브에 0.45초쯤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 속도로 조약돌을 날려도 이마에 박히진 않습니다. 그러니 어린 소년 다윗의 돌팔매질이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당시 다윗은 조약돌이 아니라 조약돌처럼 똘똘 뭉친 자신의 믿음을 날린 겁니다. 그 강력한 돌이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에 박힌 겁니다. 전쟁이 무슨 장난입니까? 돌팔매 하나로 이길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이긴 겁니다. 이처럼 다윗은 골리앗의 강력함을 이기는 용장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치명적 약점은 이것입니다. 덩치는 골리앗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습니다. 교인은 많은데 신자가 없습니다. 이게 고민이요 문제입니다. 다 자기기만 속에 있습니다. 나는 신자라는 기만 말입니다. 목회자도 그런 모습을 모른 체 합니다. 그래야 서로 편합니다. 여러분,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칭찬한 사람은 모두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님, 주께서 내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저는 감당할 수 없으니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제 종이 낫겠습니다.’ 주님이 이 말을 듣고 감동하셔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만한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여 옳습니다. 개들도 제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제 딸을 그것으로라도 고쳐주십시오.’ 주님이 이 말을 듣고 ‘여인아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은혜와 복을 누립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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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윗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어지는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13절은 다윗이 성령 충만했다고 하고, 14절은 사울에게서 성령이 떠났다고 합니다. 어째서 다윗이 복을 받고 사울은 저주를 받았는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듭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성령의 감동 가운데 살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시를 쓰고 거기에 곡을 붙여 연주했습니다. 다윗이 평생 살며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한 것은 전쟁도 아니고, 불치병도 아니고, 쿠데타도 아닙니다. 성령이 자기를 떠날까봐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지금도 다윗을 성군으로 꼽습니다. 그렇게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지만, 다윗도 치명적인 죄를 범했습니다. 충직한 자기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고의로 우리야를 최전방으로 내보내 전사하게 했습니다. 간음과 계획적인 살인을 한 겁니다. 이렇게 교활하기 짝이 없는 범죄를 한 후에 하나님이 보낸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나서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회개합니다. 시편 51편은 그때 지은 회개의 시입니다. 다윗은 눈이 상하도록, 침상이 썩도록 울며 회개하며 내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다윗은 이 사건으로 성령이 떠날까봐 안절부절하며 전전긍긍했습니다. 올해도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불행해집니다. 다윗은 성령 충만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울은 성령이 그를 떠났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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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하나님이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평가하신 근거 세 번째는 다윗은 성전을 지극히 사모하고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오벳에돔의 집에 임시로 보관하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왕의 체통도 잊고 그 법궤 앞에서 감격하며 정신없이 춤춥니다. 옷까지 다 벗겨진 줄도 모르고 추태를 부린 겁니다. 왕비 미갈이 다윗을 비웃습니다. 사무엘하 6장 20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어떻게 방탕한 자처럼 계집들 앞에서 몸을 드러낼 수 있느냐“고 하자, 다윗은 ’이는 여호와 앞에 행한 것이고, 이보다 더 천하게라도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옳다고 하시고, 미갈은 저주하십니다. ’네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 장인 7장에 가면 다윗의 독백이 나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다윗이 이토록 성전을 짓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네 손에 피가 너무 많이 묻어있다고 하시며, 네 아들을 통해 성전을 짓겠다고 하십니다. 역대상 22장에 보면 다윗이 성전을 짓기 위해 준비한 목록이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금은 2.5톤 트럭으로 72대, 은은 300대 분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은과 금을 벽돌처럼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윗이 주의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고 사랑했는지는 시편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27편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것이 다윗의 평생소원입니다. 23편, 84편, 122편에서도 다윗이 성전 사모한 내용이 절절하게 나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는 말이 가장 기뻤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과 자세로 나오셨습니까? 마지못해 죽지 못해 끌려나온 분 없습니까? 다윗은 시편 122편 6절에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성전을 멀리하고 겉도는 사람은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합시다. 교회를 사모합시다. 예배순서 가운데 광고 시간이 있는데, 사실은 이것은 예배 마친 후에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왜 예배순서 중에 넣었냐면, 예배 마치기도 전에 많이들 가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한 겁니다. 다윗의 중심을 보십시오. 다윗을 모델로 하십시오. 다윗의 중심을 보며 우리 모습을 성찰합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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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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