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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n 바리새인과 세리(눅 18:9-14)

20140209n

눅 18:9-14

바리새인과 세리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본문 10절을 보면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이 비교 자체가 가당치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를 대비하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극단하고 과격한 비유입니다. 상대가 안 되는 비유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굴욕입니다. 세리와 비교당하는 바리새인,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리새인은 의인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역사적으로 바리새인의 숫자가 가장 많을 때도 4,000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정예화된 특권층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유대민족의 지도자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사회의 권력가들이자, 율법전문가들입니다. <바리새>라고 하는 말 자체가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죄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죄인이란 말은 신앙고백적인 반면에, 복음서의 죄인은 사회학적 개념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도 양반 상놈이 있었습니다. 그것처럼 복음서의 죄인은 사회계급의 용어였습니다. 누가 죄인이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것을 바로 바리새인이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당시 점령세력이던 로마 당국의 하수인이었습니다. 동족의 고혈을 빠는 아주 나쁜 반역자, 매국노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세리와 죄인>이라고 합니다. 세리는 당연히 죄인인데, 그럼에도 보통 죄인과 구별해서 <세리와 죄인>이라 부르는 겁니다. 죄인 중 괴수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이면서 점령세력에 빌붙어 동족의 피를 빠는 죄인 중에서도 악질의 죄인이 세리였습니다. 


유대인, 바리새인이 그토록 증오하던 세리, 마치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의 앞잡이 노릇하던 매국노를 일본 사람보다 더 미워했듯이 유대인이 그토록 증오하는 세리와 가장 경건한 바리새인을 주님은 비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과연 바리새인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엄청난 도덕군자입니다. 1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것은 바리새인이 하나님 면전에서 기도하는 것이기에 거짓말은 아니며, 과장도 아닐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도한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남의 것 빼앗지도, 불의하게 살지도, 간음하지도 않았기에 저 죄인 중 괴수인 세리와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도덕군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단히 종교적이었습니다. 12절입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일 년에 두 번도 아니고 한 주에 두 번씩 금식한다고 합니다. 이 또한 사실입니다. 바리새인은 다 부자입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십일조를 제대로 한다고 합니다. 훌륭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하나님이 이 사람의 기도를 안 들어주셨을까요? 이 사람을 왜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의롭다하심을 얻은 사람은 세리라고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의외로 이런 문제에 빠져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악하게 산 것도 아니고, 나는 한다고 다 했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여전히 안 들으실까 라는 겁니다. 사실 주님은 이 비유를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의 경우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우선 그의 기도에는 오직 자기만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바리새인의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기선전, 자기광고, 자기시위입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완벽한 사람에게 기도가 왜 필요합니까? 11절을 보면 그가 한 번 <하나님이여>라고 부르긴 하지만, 이 또한 자기 광고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 합니다. 원어에 보면 <나는>이란 말이 두드러지게 나옵니다. 사람들 앞이라면 모르겠으나 하나님 앞에 어떻게 자기를 이렇게까지 시위할 수 있습니까?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광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성자도 참회록을 씁니다. 이게 맞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을 보십시오. 성전에 올라와 고개를 쳐들고 끝까지 자기선전, 자 광고, 자기를 시위합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겠습니까? 


이 바리새인은 하나님도, 자기 자신도 몰랐습니다. 칼뱅이 한 말 중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지식이고, 둘째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이다. 그런데 전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후자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자기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순간 그의 입에서 터져나온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입니다. 거룩하신 ᄒᆞᆫ님을 만나자마자 상대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거짓되고 추하고 더러운 존재인지 깨닫게 된 겁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새 물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그대로 하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반응을 보십시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느닷없이 무릎을 꿇더니 저는 죄인이니 저를 떠나라는 겁니다. 누구든 주님을 만나면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게 아니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라고 하는 겁니다. 바리새인은 아직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필요가 없습니다. 죄인이라야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데, 사죄가 필요 없습니다. 자기 병을 모르는 바리새인이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지 않았습니다. 9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바리새인은 자기가 의롭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회개도 주님의 은혜도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의 의로움만을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의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상달되겠습니까? 


바리새인이 경멸하던 세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그는 바리새인과 달리 제단 가까이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보통 유대인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데, 이 세리는 감히 고개도 못 들었다고 합니다. 세리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만 기도했다는 겁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만 기도한 겁니다. 이게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렇게 의롭다고 시위하던 바리새인이나, 나는 죽을 죄인이라고 탄식하며 기도하던 세리나 같은 죄인입니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시기에는 2층 상가나 63빌딩이나 다 땅에 붙어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의인이라고 했지만, 세리는 고개도 못 들고 자기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런 세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14절을 보면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하지 않고, 불의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바리새인처럼 기도하지 말고, 세리처럼 기도하십시오. 금식하고 십일조하며 나 잘 났다고 기도할 바에는 금식도 십일조도 하지 않고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며 기도하는 게 낫습니다. 세리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여야 합니다. 내가 뭘 좀 했다고 은근히 공치사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속죄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14절을 보면 재판장이 내리는 판결 같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판결인데, 주님 자신의 사견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린 판단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응답 받을 수 없는 잘못된 기도, 옳다함을 얻는 기도를 분별하시고, 언제나 세리의 기도를 바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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