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지절(立春之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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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런 서책 속에서 성현을 마주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밝고 빈 방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서 또 봄소식을 보며
莫向瑤琴嘆絶鉉(막향요금탄절현)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노라
이 시는 퇴계 선생이 52세 때 지은 입춘시 2수 가운데 하나로 매화를 주제로 지은 시를 따로 모아 엮은 그의 <매화 시첩>에 실린 시입니다. 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난 주 화요일이었습니다. 이즈음 잔설을 뚫고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역시 매화입니다. 그래서 설중매라 하지 않습니까?
퇴계 선생의 매화 사랑은 참 유별났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최인호 작가의 소설 <유림> 제3권에는 퇴계와 두향의 얘기가 나옵니다. 조선 중기 중종부터 인종 명종 선조까지 네 임금을 섬기며 60여 개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도 무려 79차례나 벼슬을 사양하며 끝까지 학문의 길을 걷고자 했던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이퇴계, 그에게도 이렇듯 애틋한 로맨스가 있었습니다. 퇴계는 21세에 김해 허씨와 결혼했으나 부인이 세 아들을 낳고 6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두 번째 부인인 안동 권씨도 갑자사화를 겪으며 정신이상으로 고통을 당하다 퇴계 나이 46세 때 다시 사별합니다. 그로부터 2년 후 퇴계는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그곳에서 관청기생인 두향을 만나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두향은 시와 서예와 그림은 물론 가야금 솜씨도 뛰어났으며 특히 매화를 좋아했습니다.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해 좋은 인연을 맺었으나 길게 가지 못하고 불과 9개월 만에 다시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퇴계가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기게 되었고 관리는 관기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더는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두향과의 이별을 앞 둔 퇴계는 이런 시를 남깁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그 후 두 사람은 퇴계 선생이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 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을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마음속 깊이 품고 살았습니다. 퇴계 선생은 이별할 때 두향이 선물한 매화분을 온갖 정성을 다해 돌봤으며 매화에 관한 시를 무려 118편이나 남겼습니다. 서두에 소개한 시도 실은 두 사람이 이별한 지 4년쯤 지나 퇴계가 서찰로 두향에게 보낸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퇴계는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거쳐 말년에는 고향 안동에 도산서원을 세우고 후학 양성에 전념합니다. 선생은 나이가 들어 초췌해지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매화에게 보이기 싫다며 매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 했고 70세로 세상을 떠날 때는 <매화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편 두향은 퇴계가 단양을 떠난 후 관기생활을 접고 남한강변 움막에서 평생을 홀로 지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듣고는 그와의 추억이 서린 그 남한강에 몸을 던져 선생의 뒤를 따랐습니다. 두향이 퇴계 선생에게 선물한 매화는 지금도 도산서원 앞뜰에서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고, 퇴계 선생의 종가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두향의 묘를 관리하며 그녀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입춘지절, 퇴계와 두향의 그 절절한 사랑을 떠올리며 우리의 주님 사랑도 잔설을 헤집고 꽃을 피우는 매화향 같기를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