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6n 바르실래(삼하 19: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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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6n
삼하 19:31-39
바르실래
(삼하 19:31-39, 개정)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본문은 바르실래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제1대 왕이고, 2대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30세에 등극하여 40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이가 70입니다. 다윗처럼 치열하게 산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전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몸을 혹사했던 것 같습니다. 70세인데 벌써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사를 논하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2장 1절 이하를 보면,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게 된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이것이 다윗의 유언의 첫 번째 당부입니다. 민족의 장래라든가 하는 당부가 아니라 솔로몬 개인 신앙에 관한 당부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율법과 율례를 잘 지키라는 겁니다. 두 번째 당부는 7절입니다.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두 번째 당부는 특이합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라는 겁니다. 바르실래가 어떤 사람이길래 다윗이 유언까지 하며 그의 아들과 자손을 돌보며 은총을 베풀라고 하는 겁니까? 길르앗이라고 하면 요단강 동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시골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길르앗이 나옵니다. 시골 사람 바르실래에게 다윗이 죽으면서까지 그 자손을 보살피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르실래는 다윗이 어려웠을 때 진심으로 돕고 섬긴 사람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한 적이 있습니다. 맨발로 왕궁을 빠져나와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 마하나임까지 피신했습니다. 아마 이 때가 다윗의 생애 중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때일 겁니다. 원래 다윗은 피난에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 전에는 사울 왕에 쫓겨 얼마나 쫓겨 다니고, 숨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쫓길 때는 다윗이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의식주가 변변치 못한 상태에서 피신해야 했을 때 바르실래가 유일하게 도왔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며 다윗 군대에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사무엘하 17장 28절 이하를 보면 바르실래가 어떻게 다윗을 도왔는지 목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공급했다고 합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닌데도 이 모든 것을 공급한 겁니다. 권좌에 있을 때는 사람이 몰리지만, 거기서 내려오면 다 떠나는 게 세상 이치인데, 바르실래는 반란군에 쫓기는 다윗을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야 말로 가장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나 바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미력한 것이지만 주님이 필요하실 때 기꺼이 내놓아야 합니다. 그가 부자였다고 하나, 얼마나 대단한 부자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굉장한 출혈이었을 겁니다. 강요가 아니라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와 모든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희생적인 봉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아들들, 후손들이 왕궁을 드나들며 왕의 식탁에서 먹는 복을 누립니다. 주님은 반드시 이런 헌신을 귀하게 받으시고 잊지 않으십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그 은혜를 잊지 못해 죽을 때 유언으로까지 남기면서 바르실래의 자손이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게 하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면 주님은 우리가 죽어도 그 수고를 잊지 못하십니다. 우리 당대에도 은혜를 베푸시지만, 우리 후손들에게도 은총을 베푸십니다.
바르실래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도왔습니다. 당시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반란군이 그 사실을 알면 3족을 멸했을 겁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는데, 사울이 그 사실을 알고 한 자리에서 그 가족과 친족 80여 명을 죽입니다. 그럼에도 바르실래는 주저하지 않고 다윗에게 베풀 수 있는 모든 선의와 호의를 제공했습니다. 바르실래가 왜 그런 위험을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다윗과 그 일행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랬기에 다윗이 바르실래를 은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유언까지 하며 그의 자손을 챙기라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이라 해도 선뜻 나서서 하기 쉽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한두 번은 몰라도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바르실래가 무슨 생각으로 다윗을 도왔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다윗을 돕다가 어떤 해를 당한다 해도 그것까지 감당하리라는 각오는 되어 있었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 반드시 모험이 따릅니다.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 결단과 의지가 있어야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해서 당장에 떡이 생깁니까? 오히려 주의 일은 손실을 각오해야 합니다. 바르실래는 희생적인 봉사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것에 감동을 받고 아들에게 유언으로 바르실래의 자손을 챙기라고 한 겁니다. 우리의 희생적인 봉사, 모험적인 헌신에 주님은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양보하고 손해를 보면, 주님은 견딜 수 없어 하십니다. 반드시 만 배로 갚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희생적인 헌신, 모험적 충성에 약하십니다. 절대 잊지 않으시고 우리 자자손손에게 갚아주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바르실래에게 희생적인 봉사와 헌신을 통해 은혜를 입고 나서 평생 아니 죽는 순간까지도 잊지 못해 자기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심정입니다.
바르실래는 전제 없이 봉사했습니다. 다윗이 지금은 도망다니지만, 언젠가는 예루살렘에 복귀해서 내게 한 자리 주겠지 라는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르실래에게는 야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치셔서 압살롬이 비참하게 죽습니다. 그가 그렇게 자랑하던 금발을 자랑하며 나귀를 타고 달리다 그 금발이 상수리나무에 걸립니다. 뒤를 따라가던 장군이 압살롬의 가슴에 창을 꽂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종료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복귀를 하는데, 그가 누구부터 찾습니까? 바르실래부터 찾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예루살렘 왕궁에 가서 당신이 죽을 때까지 내가 모시겠다고 하는 겁니다. 바르실래가 무엇이라 답합니까? 본문 34절 이하를 보면, 내 생명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며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부모와 선조의 묘가 있는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겠다고 하며 극구 사양합니다. 바르실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도왔으나 조건이 없었습니다. 사심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헌신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주님과 이웃에 대해 이런 자세로 봉사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다윗이 바르실래 자손에게 남긴 유언은 최고의 영광과 보상입니다.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하라는 것 말입니다. 순수하게 돕고 은혜를 베푸십시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헌신을 다짐하는 여전도회 회원들은 바르실래에게서 도전도 받으시고 깨달음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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