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러시아의 최종병기 빅토르 안

한국인의 유전자, 대한민국의 아들,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황제였던 안현수 선수가 이제 <빅토르 안>이라는 러시아산 미사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2011년 12월 초라한 실직자의 모습으로 이 나라를 떠날 때만 해도 그가 이토록 위협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난주 20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폐막한 <2014 유럽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 안현수는 남자 500m, 1000m, 3000m 슈퍼 파이널 그리고 5000m 계주까지 우승을 휩쓸며 4관왕에 올랐습니다. 폐막 당일 영국의 BBC는 안현수를 <러시아의 소치올림픽 금메달 희망 10명>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그동안 부상과 한국빙상연맹과의 갈등, 소속팀 해체, 러시아 귀화 등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안 선수가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그 특유의 폭발력을 완전히 회복했다며 쇼트 프로그램의 가장 유력한 금메달 다관왕 후보로 점찍었습니다. BBC는 또 안 선수의 지난 토리노 동계올림픽 성적도 소개했는데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획득하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케이터임을 증명한 바 있다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유럽선수권 500m 경기에서도 초반에는 뒤에서 따라가다 막판 두 바퀴를 남겨두고 절묘한 코너링으로 선두를 제치고 나가 단숨에 결승선까지 내달렸습니다. 체력이 좋아지자 기술과 풍부한 경험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5000m 계주에서도 역시 마지막 두 바퀴를 남겨두고 네덜란드 선수를 따라잡은 다음 결승선을 통과하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안현수 선수의 완벽한 재기와 유럽선수권 4관왕이라는 빼어난 활약상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심경은 복잡하고 착잡한 게 사실입니다. 더구나 성남시민들의 마음은 더욱 씁쓸하고 명치 끝이 아릴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 선수 빅토르 안이 되기 전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 시절의 안현수는 동계올림픽, 세계선수권, 동계 아시안 게임, 동계 유니버시아드 등에서 금메달만 무려 28개를 안겨준 그야말로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왜 졸지에 대한민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택했으며 80년대 러시아에서 명성을 떨친 한국계 요절 록가수 <빅토르 최>처럼 러시아의 전설이 되겠다고 <빅토르 안>으로 개명까지 한 것일까요?


여러 해 계속됐던 안 선수와 한국빙상연맹 간의 갈등과 마찰은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 선수가 러시아행을 결심하게 된 보다 결정적인 사건은 당시 그의 소속팀이었던 성남시청 쇼트트랙팀의 해체였습니다. 그의 부친도 <성남시 팀 해체가 러시아 귀화의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만약 2011년의 성남시 쇼트트랙팀 해체만 없었어도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현수로 남아 이번 소치에도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로 출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팀이 해체되고 그 어디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없는 가운데 4개월간 백수로 지내며 더 이상 연습장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고민하며 괴로워하다 결국은 러시아 빙상연맹의 러브콜에 응하기로 했다는 안현수 선수, 그는 지금도 팀 해체를 선언하던 날 한 성남시장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쇼트트랙 선수 1명이면 가난한 아이들 3명은 도울 수 있다. 나는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 이런 데 더 이상 돈 못쓴다!> 그날 크게 마음을 다친 안현수는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참 쉽다. 참 일방적이야!>하는 자조 섞인 메모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성남시가 최근 돈 먹는 하마로 알려진 프로축구단 <성남 일화>를 인수했습니다.

 

아무튼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의 대한민국 메달 레이스에 강력한 다크호스가 된 러시아산 최종 병기 빅토르 안! 미안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당신 같은 보석을 가질 자격이 없나 봅니다. 3년 전 당신을 러시아로 보낸 성남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쉽고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부디 이번 소치에서 상대가 대한민국 선수인 경우 더욱 투지를 불태우십시오.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보란 듯 다시 한 번 당신의 존재감을 온 세계에 떨치십시오. 저는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비록 러시아의 국가가 울리고 러시아의 국기가 게양되는 가운데 금메달을 목에 건다 해도 저는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