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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9m 사랑의 송가(고전 13:8-13)

20140119m

고전 13:8-13

사랑의 송가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보통 은사장이라 하면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여기에 은사 목록이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 이하입니다.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28절 이하도 보십시오.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이렇게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소개하고, 은사장 제일 마지막 절인 31절에 가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은사장의 결론인 31절입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무슨 뜻입니까? 위에서 열거한 각종 은사들보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은사를 소개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3장으로 넘어갑니다. 


13장은 저 유명한 사랑장입니다. 12장이 은사장이라면 13장은 사랑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가장 아름답고 고전적이며 위대한 사랑의 송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을 마무리하면서 말한 ‘더욱 큰 은사, 가장 좋은 은사’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이 마지막 절인데,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왜 사랑이 제일일까요? 왜 믿음이 제일이 아닐까요? 본문 8절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 외에는 그 무엇도 폐합니다. 예언도 방언도 다 그칩니다. 믿음도 소망도 마찬가집니다. 천국 들어가는 순간, 그 유효기간이 끝납니다. 믿음도 소망도 천국가자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이 아무리 좋아도 천국 들어가는 순간 끝납니다. 그러나 사랑은 천국 들어가서도 더욱 빛납니다. 영원합니다.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가장 큰 은사고 제일입니다. 


자동차 뒤에 물고기 모양의 앰블럼 붙이고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 글씨도 적혀있는데, 그게 <이크투스>입니다. 발음이 <이크투스>이고, 이 낱말은 물고기입니다. <쿠오바디스>라는 영화에 보면, 여주인공이 땅에 물고기 그림을 그립니다. 이 물고기 그림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암호였습니다. 왜냐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는 암호였기 때문입니다. <이크투스>는 헬라말 단어 예수스(예수), 크리스토스(그리스도), 데오(하나님의), 휘오스(아들), 소테르(구원자)의 첫 글자를 딴 단어입니다. 여러분, 물고기 앰블럼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 이크투스보다 사랑입니다. 굳이 차 안에 십자가 목걸이 걸지 않아도, 성경을 심장 가까이 대고 다니지 않아도, 사랑을 하면 그게 주님의 제자임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이비입니다. 신자를 사칭하고 다니는 사이비 신자 말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주님은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만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식고 극단한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인 물세례와 성령세례만 받으면 끝납니까? 아닙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랑의 세례도 받아도 받아야 합니다. 12장 31절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고, 14장 1절은 “사랑을 추구하며”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가 사모한다고 받는 게 아닙니다. 12장 11절 말씀처럼 오직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은사입니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성령의 뜻이 아니면 안 주시는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많은 분이 사모하는 방언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분명히 어떤 이에게는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 통역하는 은사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한 성령이 그 뜻대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사랑의 은사만큼은 예외입니다. 이 사랑의 은사는 사모하라고 했고, 구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은사는 누구나 사모하면 받을 수 있고, 기도하면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의 은사에 한해서는 기도하고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절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도 아닙니다. 사람의 신체 중 중요한 것은 심장입니다. 심장이 피를 잘 공급해야 모든 기관이 원활히 작동합니다. 만약 심장이 멎으면 일시에 다른 기관도 다 멎습니다. 그러나 다른 기관이 부분적으로 고장 나도 심장이 살아있으면 괜찮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심장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사랑은 상대가 아니라 절대요, 시한부가 아니라 영원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가져야만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제일이 사랑이란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제일 좋은 은사입니다. 주님은 사랑의 화신입니다.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내보여야 합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신분증을 내보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미워하는 사람을 회개하도록 기도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지옥에 떨어져야지 어느 날 갑자기 울며불며 회개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 수준이 바로 이 정도입니다. 전도도 반드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이 전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 믿기 싫으면 그렇게 살다가 죽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전도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안 믿는다고 저주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다가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다 죽이겠다고 하자, 모세가 하나님 앞을 가로막고 ‘저부터 죽이라. 저부터 생명책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저주받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다 죽더라도 나만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내가 죽더라도 남이 살아야 합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내 자존심, 내 잘난 것만 증명되면 된다 식으로 처신하면 안 됩니다. 냉정하고 정직하게 짚어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친하게 지내는 분 계십니까?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놓아도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집에서는 고민하다가 교회 와서는 만사가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하나도 진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주일을 지킵니까? 다 주님을 닮고 따르자는 겁니다. 이 얘기는 달리 표현하면 주님의 심장을 품고 사랑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드리면서 원수를 만들고, 기도하면서 남을 미워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도 얼마나 남을 경멸합니까? 저 말씀이 다 그 인간에게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은사를 구합시다. 아니 사실 우리는 사랑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다만 그 받은 은사를 고스란히 땅에 묻어두고 살 뿐입니다. 우리는 원수사랑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며, 죽어도 절구에 찧어서 죽어야 할 사람인데 주님이 내 대신 당하시고 나를 살려주신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이런 사랑의 체험이 있기에 이웃사랑, 원수사랑이 불가능한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그 극적인 사랑을 체험했기에 우리 또한 남을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은사를 올해는 묻어두고 지내지 맙시다. 더욱 사랑의 은사를 사모합시다.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 몸을 불사를 믿음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 어떤 은사보다 사랑의 은사를 구합시다. 올해는 사랑의 은사로 충만한 사랑의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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