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있잖아, 약해지지 마!

갑오년 새해도 여전히 잿빛 풍경입니다. 단순히 추운 날씨나 중국발 미세먼지 탓만은 아닌듯합니다. 어디에서도 <청마>의 기상이나 역동성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기는 좋아지고 있다는데 우리네 사정은 여전히 짙은 안갯속입니다. 연초부터 우리나라 행복지수가 세계 90위라는 둥 하루 평균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2013년 현재 자살률도 여전히 세계 1위요 국민 스트레스 지수도 세계 최고라는 등의 스산한 보도만 눈에 띕니다. 


문득 지난해 1월 20일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일본의 최고령 시인 시바타 도요의 싯귀가 생각납니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_ <약해지지 마> 


일본 열도가 쓰나미 참사로 절망하고 있을 때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으로 패닉 상태의 일본인들에게 희망의 버팀목이 됐던 할머니,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두었던 100만 엔을 털어 2010년 3월 99세의 나이로 생애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발간하여 160만 부라는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아마추어 시인.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들

제각기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_ <살아갈 힘>


아들의 권유로 92세 때부터 짓기 시작했다는 시바타 도요의 시는 동시처럼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끼게 합니다. 몹시 친밀한 사람이 보낸 다정한 편지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 잠시 눈을 감으면 자신에게도 있었음직한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도 합니다. 도요 할머니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는 바르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온몸으로 보여준 분입니다. 백세가 넘은 초고령임에도 시 속에 녹아있는 유머감각과 긍정적이고도 흐트러짐 없는 정갈한 마음가짐, 그 순수한 감성이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집니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_<바람과 했살과 나>


배운 것 없이 늘 가난했던 그녀의 인생,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했지만 다시 남편과 사별하고 20년이 넘도록 홀로 살며 생활이 너무 고단해 스스로 죽으려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시를 만나 다시금 삶을 추스리게 됐다는 할머니.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소리 하지 않아

아흔여덟에도 사랑은 하는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_<비밀>


 힘들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아침이슬 같은 시, 지치고 피곤하여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옆에서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듯 힐링이 되는 따뜻한 시, 너무도 소박하지만 그 속에는 백세를 넘긴 한 할머니의 온갖 풍상이 오롯이 녹아있는 진솔한 시.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생겨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돼 

힘차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쏟아버려

자, 새 찻잔에 커피를 마시자

_<나에게>


살아 있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선물이자 축복이라고 말했던 희망 전도사 시바타 도요 할머니. 그녀가 1년 전 내일 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나즈막한 위로의 인삿말입니다.


있잖아, 천국에 가면 햇살이 되고 바람이 되어 너를 응원할께. 약해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