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40112m 비전을 위하여(행 4:32-37)

20140112m

행 4:32-37

비전을 위하여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올해는 우리에게 중요한 해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인 2015 프로젝트를 1년 앞둔 전야제와 같은 해입니다. 올해 우리는 어떻게 2015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천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할까요? 


성경에는 비전의 이상적인 모델이 많습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그런 모델입니다. 우리 교회는 2015 프로젝트가 비전인데, 초대교회는 어떤 비전입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게 초대교회에 주신 주님의 비전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비전을 잘 수행했습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던지 사도행전 2장 41절을 보면 회개 후 세례 받고 기독교 신앙에 입문한 사람이 하루에 3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4장 4절을 보니 남자만 5천 명씩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도 하루에 3천 명, 5천 명씩 기독교 신앙에 입문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인데, 초대교회 때는 기독교가 아직 사이비 종교로 치부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라는 비전을 잘 수행한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을까요?


우선 모든 성도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고 합니다. 32절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2장 46절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한마음으로 떡을 떼며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공동체에 주어진 비전을 실현하려면 공동체 성원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초대교회가 기적같이 비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믿는 무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작은 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남한만 해도 철저히 분열되어 있습니다.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대립하고 분열하고 반목합니다. 그래서 민족적인 비전을 우리가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왜 이렇게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분열하고 나뉠까요?


한마디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끼리도 신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류 역사상 첫 살인은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남이나 원수가 아니라 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됨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오래된 영화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영화 기억나십니까? 월남전 소재의 영화입니다. 미군 병사 한 명이 베트콩에게 무참히 사살을 당합니다. 그러자 그 소대의 한 상사가 어느 마을에 가 무차별적으로 무고한 양민을 살해합니다. 그러자 동료 상사 한 명이 거기에 반대하며 반목을 시작합니다. 어느 전투에서 서로 반목하던 한 상사가 동료 뒤에서 총을 쏴서 죽입니다. 그리고서는 적과의 교전 중에 죽었다고 위장합니다. 그런데 신병이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마침내 그 신병이 그 상사를 죽입니다. 신병도 부상당해 후방으로 이송되며 한 마디를 남깁니다. “외부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이게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한마음 한뜻이 안 되면 전쟁은 물론이고 비전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향도, 살아온 환경도, 생활수준도 다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엮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제는 제발 눈꼴 보기 싫어 교회 못 나가겠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직분자일까? 그런 말 하지 마시고 오히려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이렇게 남과 하나 되지 못할까 하며 자신을 안타까워하십시오. 좀 더 관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그럴 때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비전을 관철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초대교회도 대단한 것 같지만 12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3천 명씩, 5천 명씩 주님 앞에 굴복한 것입니다. 주님의 비전을 잘 감당한 그 배경에는 초대교회의 하나 됨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모든 성도가 청지기 의식이 있었습니다. 32절을 다시 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2장 44절 이하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자진해서 자기의 소유를 팔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는 누구도 자기의 소유를 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만큼 청지기 의식에 투철했습니다. 하루 3천, 5천 명씩 회개하게 만든 초대교회 역사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이 사실이 극단하고 과격하게 보이나 이게 맞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면 이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무엇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빈손으로 갑니까?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히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기독교 신앙을 접하며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자기 소유를 팔아 사도 발 앞에 갖다 놓고 가난한 자를 돕자는 것입니다. 만유가 다 하나님 것이고, 나는 한시적인 관리인일 뿐입니다. 소유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소유권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집행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사실을 예수 믿고 성서를 접하며 새삼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원 그 누구도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간, 건강, 재능, 미모, 남편, 아내, 자식, 직장 이 모든 게 다 주님의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됩니다. 내 심장, 생명도 주님 것입니다. 주님이 소유권을 발동하시면 당장에라도 다 바쳐야 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며 사는 게 청지기입니다. 인정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내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이라고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행위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10/10이 다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1/10을 바치면서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십일조는 돈에만 국한 되는 게 아닙니다. 내 시간, 내 재능에도 다 적용됩니다. 나의 모든 것에 대하여 1/10을 바치는 행위가 청지기의 삶입니다. 오죽하면 자식 가운데도 십일조를 바치겠습니까? 지금도 오래된 기독교 전통의 국가는 장남, 장녀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사제나 수녀로 말입니다. 그것은 내 자식을 다 바칩니다고 하는 뜻입니다. 올해 제직들은 청지기의 삶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 29절을 보면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1절을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33절을 보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라고 합니다. 기도하고, 전도하고, 사도들도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기도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나 오늘의 교회나 전도가 없는 비전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해도 전도 캠페인을 벌였는데,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전도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전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게 아닙니다. 정말 힘껏 해야 합니다. 더구나 2015 프로젝트를 1년 앞에 두고 있는 우리 교회로서는 절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 모두가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정확한 고백입니다. 우리도 남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복음을 전하며 자랑할 게 없음은 자신이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전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합시다. 그래서 비전 2015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힘을 보탭시다. 


이게 바로 2015 프로젝트 전야제인 올 한 해 우리가 힘써야 할 과제입니다. 모든 제직이 헌신하고 희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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