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계시는 하나님(사 45: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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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계시는 하나님
사 45:14-19
중세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deus absconditus>(숨어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deus revelatus>(계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중세 때는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불렀고, 개혁가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계시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다고 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은 보이지만 정작 창조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빛 가운데 숨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15절).
부끄럽게 하시려고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16절).
하나님은 특히 우상을 제작하거나 숭배하는 자들에 대해 숨어 계십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하나님은 그들이 상실한 마음으로 살다 언젠가는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숨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듯 함부로 살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경거망동하면 숨어계신 자리에서 비웃으십니다. 시편 42편 3절은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왜 눈물이 음식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안 계신 것처럼 멋대로 조롱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비통해서 일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숨어계심 때문에 안심하고 부끄러운 삶과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숨어계시나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수욕이나 부끄러움을 당치 않도록 더욱 신실하게 살아야 옳을 것입니다.
욕을 당케 하시려고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17절).
우리는 다 눈에는 보이시지 않지만 숨어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시편 139편의 다윗의 시입니다.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사실 이게 숨김없는 우리들의 고백이자 진술입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이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정작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고 계십니다(대하 16:9). 진실이 이러함에도 숨어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가 베푸시는 구원을 불신하는 자는 반드시 욕을 당하며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안 보인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부정하는 자는 필히 수욕을 당케 하십니다. 부디 지금도 숨어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 인생들의 생사를 관장하고 계신 하나님께 말씀의 계시를 통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자의 삶에 은혜와 축복을 베푸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