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슬픈 자화상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 나를 용서해다오.> 지난 6일 서울 신대방동의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수 이특의 아버지가 남긴 유서입니다. 발견 당시 이특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침대 위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아버지는 안방에서 목을 맨 채 숨져있었습니다. 이특의 아버지는 지난 수년간 홀로 치매 부모를 돌보며 간병하느라 심신이 몹시 지친 상태였고, 최근에는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효자로 알려진 이특의 아버지도 버티다 버티다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모든 걸 놓아버렸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병든 노부모를 제 손으로 다 살해했겠습니까마는 사랑하는 자식의 손에 숨져야 했던 병든 부모의 최후가 너무도 가혹하고 비극적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런 비극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 하루 뒤인 7일에는 또 대전의 한 50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해 5월 청송에서는 4년 동안 치매 아내를 돌봐온 80대 남성이 승용차에 아내를 태우고 저수지로 뛰어들어 함께 목숨을 끊기도 했고, 또 지난해 2월에는 치매에 걸린 80대 어머니를 간병하던 50대 아들이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70대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남편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게 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2014년 현재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요 슬픈 자화상입니다. 


특히 치매는 가정을 파탄낼 뿐 아니라 가족들의 인간성마저도 말살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래서 연세 드신 어른들은 누구나 치매를 가장 무서워합니다. 남성보다는 여성, 도시보다는 농촌, 배우자가 있는 노인보다는 없는 노인들의 비율이 더 높다는 치매, 그 수발은 배우자, 큰며느리, 딸, 장남 순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엄마를 보면서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치매란 사실을 알았다>며 치매 환자인 홀어머니를 간병해 온 지난 5년의 세월을 <전쟁과도 같았던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버려진 옷, 신발, 캔 등을 줏어와 집안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더니 급기야는 가위와 칼을 들고 가족들을 위협하기도 하셨고, 잠시만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집을 나가셨다>면서 <그런 엄마를 붙잡고 날마다 울었노라>고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는 57만 명,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부담은 여전히 거의가 가족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치매 환자들의 가족들은 누구나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상처라는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년의 모세에 대해 이렇게 전합니다. <그의 나이가 120세였으나 죽기까지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도 아니하였더라>(신 34:7).  이렇듯 모세는 기력뿐 아니라 백세가 훨씬 넘은 고령임에도 치매에 걸리지도 않고 분별력이 여전했으며 백성들을 이끌어 가는 지도력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노쇠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힘과 꿈의 원천이 된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백성들의 앞길을 미리 내다보며 격려하고 준비시키는 일에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을 다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늘 하나님의 영과 투명한 정신으로 살았기에 히브리 역사에 그토록 <눈빛 총총하고 기력 정정한 영원한 청년>의 모습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부디 꿈에 빛나던 모세의 눈동자와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시며 육신의 약함과 속절없는 세월의 안타까움을 이기시길 간절히 빕니다.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