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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1229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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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 25:14-30</p>
<!-- paragraph:p0003 -->
<p class="p1">한 달란트 받은 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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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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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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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외경 중에 나사렛 복음이란 게 있습니다. 그 문서에도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만 마태복음에는 한 달란트 받은 자만 책망 받지만, 나사렛 복음에서는 첫 번째만 칭찬을 받고, 두세 번째 종은 책망을 받습니다. 두 번째 종은 그냥 가져와서 책망을 받았고, 세 번째 종은 받은 돈으로 창녀들과 탕진해서 감옥형에 처해졌습니다. 어거스틴은 오늘 본문의 비유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주인은 주님이시고, 달란트 받은 종들은 신자이고, 주인이 먼 여행을 떠났다는 얘기는 부활하신 후 하늘로 가신 승천을 뜻하고, 주인이 오랜 세월 후에 돌아왔다는 것은 재림을 가리키며, 종들과 결산을 했다는 것은 종말 최후심판을 뜻하고, 다섯, 두 달란트 남긴 종들에게 참여하라고 하신 잔치란 천국을,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 곳을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대부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유가 그동안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더 그렇습니다. 왜 주님의 비유가 비판을 받았을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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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주님이 세 사람의 종에게 똑같이 배분하지 않았다는 게 틀렸다는 겁니다. 인간 차별을 했다는 겁니다. 분배균등, 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주인이 결산할 때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며, 있는 자는 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가긴 것마저도 빼앗긴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각자에게 다르게 달란트를 맡긴 것은 각 개인의 능력차를 인정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15절 상반절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를 관리하지 못할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지 않은 사려가 깊은 것입니다. 주인이 결산할 때를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라는 수적 차이에도 주인은 똑같이 칭찬합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종에게 주신 복이나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베푼 복이나 똑같습니다. 21절과 23절이 똑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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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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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런데 이 비유에서 가장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람은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그가 결산 때 주인에게 나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24절 이하입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란 것은 강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주인이 돌아와 냉혹할 정도로 그간의 종들의 삶을 심판했다는 것은 두려운 주인이 맞습니다. 그러나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은다는 것은 주인이 날강도란 뜻입니다. 어떻게 심지 않고 거둘 수 있습니까? 주인이 그런 사람입니까? 불로소득을 업으로 삼는 투기꾼으로 알았다는 겁니다. 한 달란트가 주인을 보는 시각입니다. 터무니없는 오해요 모함입니다. 주인의 반응을 보십시오. 26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주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능력만큼 달란트를 배분했습니다. 또 심은 만큼 찾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두 달란트 남긴 사실에 칭찬과 상을 주었습니다. 주인이 언제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모으지도 않고 헤쳤습니까? 25절 하반절입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말도 묘합니다. 내가 언제 당신의 것을 허비했습니까? 원금 그대로 돌려드렸습니다. 내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남처럼 장사해서 남기지는 못했으나 원금은 상환했다는 겁니다.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게 없다는 겁니다. 상 안 받아도 좋고 손해 끼친 것 없으니 내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 한 것도 없지만 잘못한 것도 없다는 겁니다. 나사렛 복음의 세 번째 종은 창녀들과 어울려 받은 달란트를 탕진했기에 책망을 받았는데, 본문의 세 번째 종은 원금은 살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종의 잘못은 무엇입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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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직 하나 주인이 장사하라고 달란트를 맡겼음에도 이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 즉시 가서 장사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인의 의도와 뜻에 그만큼 바르게 응답했다는 뜻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는 것은 그 받은 만큼의 소임에 충실했다는 뜻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두 달란트 남긴 것도 마찬가집니다. 주인은 달란트를 가져가서 재생산하라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제 멋대로, 제 좋을 대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그를 무익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차라리 그가 한 달란트를 날려버렸다는 것이라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장사한다고 다 성공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네가 최선을 다했지만 여의치 않았구나’ 하시며 오히려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아예 모험이나 결단하지 않고 그저 땅에 묻어두었다는 것은 주인의 뜻이 아닙니다. 주인의 추상같은 심판을 보싮오. 30절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어거스틴은 이 대목을 주님이 훗날 재림하셔서 최후심판을 통해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은 지옥으로 추방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이게 바로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자의 최후 운명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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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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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렇다면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둔 이유입니다. 그는 주인이 무서워서 그랬다는데 이것은 핑계인 것 같습니다. 실제 이유는 그 받은 달란트를 하찮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묻어두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과소평가한 겁니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 사명, 책임, 의무, 과제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는 받은 달란트가 없다고 착각하거나 받은 달란트가 있다 해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겁니다. 그래서 땅에 묻어 두고 살아도 걱정이나 고민이 없습니다. 무책임한 삶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주면서 내게는 한 달란트라니, 이것 갖고 뭘 하라는 건가?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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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은 모험이나 희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말이 그렇지 장사가 어디 쉽습니까? 그래서 엄두를 못 내고 괜히 본전마저 날리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도 봉사나 헌신도 모험이나 결단, 자기 희생 없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결단해야 하고 모험해야 합니다. 그게 두렵고 무섭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지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이런 걱정은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결단하고 모험한 겁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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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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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지막으로 불신앙 때문일 수 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반드시 결산할 것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믿지 않았던 겁니다. 그가 정말 최후 결산을 확신했다면, 무책임하게 살지 않았을 겁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결산했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름에도 주인이 안 오는 겁니다. 그때부터 안심하고 무책임하게 산 겁니다. 그러나 결국 주인이 왔고 결산도 칼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오랜 후라는 덫에 걸린 겁니다. 우리의 문제도 바로 이 최후결산에 대한 불감증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내가 받은 달란트에 대해 최후결산이 있다는 것은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반드시 결산한다는 투철한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내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타성에 젖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어도 위기의식이나 고민이 없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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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올 한 해 여러분은 자신의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하며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개인차는 있어도 주님으로 달란트를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달란트를 받은 종입니다.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하였습니까? 오늘이 송년주일인데, 제게 두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여기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제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제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제게 한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제가 한 달란트를 남겼노라 떳떳하게 나설 수 있습니까? 우리가 1년 단위의 연말결산이 소중한 이유는 연말결산과 인생 최후결산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말결산의 연장이 나의 최후의 결산입니다. 연말결산의 결과가 악하고 무익한 종이면 최후결산도 마찬가집니다. 연말결산과 최후결산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일년 단위의 중간결산인 연말결산이 좋아야 최후결산이 복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잔치에 참예할지어다“라는 주님의 칭찬을 매년 들어야 합니다. 착하고 신실한 종이 됩시다. 악하고 무익한 종이 되어 춥고 어두운 바깥에 내어쫓기는 불행한 종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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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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