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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위하여(사 43:22-28)

소통을 위하여

사 43:22-28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소통>인 것 같습니다. 시대 정신의 근간처럼 인식되는 소통, 26절의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는 말씀도 실은 <소통하자>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어제가 성탄절이었습니다. 성탄절은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성육신> 사건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까요? 다름 아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변론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초월세계에,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사는 한 양자 간의 소통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말씀이 육신이 되거나 육신이 말씀이 되어야 만남과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육신이 되사 이 누추한 땅에 성탄하신 것입니다. 나를 만나 서로 변론하고 소통하시기 위해...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다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23절).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을 다하는 산 제사를 바라시지 결코 형식적인 제사의식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양고기에 굶주리시고 짐승의 피에 목마른 분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제물이 아니라 제물에 담긴 우리의 중심을 받으시고 그 제사에 담긴 하나님 공경하는 마음을 흠향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와 제물에는 그런 진정성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형식과 제물 만의 제사는 죽은 제사이고 하나님 공경의 영성이 담긴 제물과 제사는 산 제물, 산 제사입니다. 부디 산 제사로 하나님을 공경하시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진정 어린 하나님 공경으로 성탄하신 주님과 변론하고 소통하십시오. 


나를 괴롭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24절).

우리가 정직하고도 성스런 예배를 드리지 않고 수고도 아무런 희생도 없이 대충 형식적인 싸구려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 하나님께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될 뿐이라는 지적이십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죄짐으로 하나님을 수고롭게 하며 우리의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1:11-12). 제발 더 이상은 하나님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끝끝내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28절)고 하셨습니다. 부디 주님의 성탄 현장에 달려가 온 마음으로 찬양하며 경배한 목자들처럼, 강을 건너고 사막을 횡단하여 베들레헴까지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처럼 언제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시므로 복 되길 기원합니다.